나는 글을 써야 한다

[100-1]

by Dorritos
글을 쓰지 않고 지나가는 날들은 화살 같다.

시체 같다, 고 생각했던 날들이 지나가고도 난 여전히 살아 있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것을 멈췄을 때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너를 잊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만물에 널 새긴 지 오래다. 너의 생명은 고스란히,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목소리가 되었다. 그것들은 입을 모아 나를 향해 끊임없이 외쳤다. ‘글을 쓰라’는 그 말을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작년 12월 짧고도 강렬했던 나의 입시가 끝났을 무렵, 이제는 글을 써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썼었다. 그리고 그 글 이후에 단 한 페이지의 유의미한 글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글을 써야 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통과하기 때문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말이야. 빠르게 빠르게. 그래서 너무 슬퍼. 모든 것들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이 너무 슬퍼. 별것도 아닌데 눈물이 나오려 한다."



매일의 사유와 감정들을 글로 남기지 않으면 그 시간은 안개같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직감했을 때 느낀 그 음산한 공포감이란.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겠다고 했잖아.’ 그러나 글을 쓰지 않으면 사유도 할 수 없다. 지금처럼 안일하게 있다가는 생각의 속도나 깊이가 얇아지고 얕아져 무에 가까워질까 봐 두려웠다. 무가 채썰리듯, 내 생각도 시간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에 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 왜 통증을 느끼지 못했을까?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강의를 듣고 책도(아주 조금) 읽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정신없이 논다.

이전과는 너무나 다른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 사유들, 느낌들이 쏟아지는 별들처럼 나를 두드린다. 똑똑. 그들은 내 머릿속 집을 찾아온 손님들이다.

글쓰기는, 그들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대접하는 일. 방금 캐온 신선한 사유의 재료들을 요리하는 일. 내 요리를 배불리 먹고 기분좋은 토론을 벌이는 생각들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일. 그들이 떠난 뒤 남기고 간 미지의 알들을 따뜻하게 품어 부화시키는 일.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싸는 거라고 누가 그랬다. 인풋이 너무 많은데 이를 배출하지 못하면 변비가 된다.

지금 속이 꽉 막혀서 목 끝까지 차오른 기분이다. 글을 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강의도, 책도, 지식도, 대화도 모두.

난 돼지니까 많이 먹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말이야,



글을 써야 해.



이제부터 글을 많이많이 쓸거다.





만약 내가 정말로 글을 많이많이 쓰면,

세상에서 가장 얇은 피부를 가진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답을 찾지 않아도 행복한 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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