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 Aug 11. 2024

자유 갈망과 주체 상실

도덕 없는 사회

경제 성장기를 지나 국가의 경제가 안정되면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는 그동안

공동체의 단합과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주의의 증가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

혹은 인권 가치의 향상처럼 다양한 요소가 결부되어 있다.


적어도 자유를 보장하려고 나서는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확산은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개인의 자유 확보 내지 사회적 가치의 강요로부터의 탈피는

현대 철학에서도 가장 활발히 연구가 이뤄진 분야다.


비록 현대 철학뿐만 아니라 기존 가치에 대한 파괴를

거룩하는 작업들은 쉽게 이목을 끌었다.


가령 니체의 경우에는

전통적 가치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대표적인 철학자다.


그의 작업에 기초해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더욱이 직설적인 그의 문체는

열망을 북돋기 충분했다.


그러한 그의 철학은 지난 몇 년간

그의 철학을 정리한 저서들을 통해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거부는

곧 도덕적 가치에 대한 반항과 같다.


기본적으로 도덕은 '내가 소중하기에 

남도 소중하다'라는 구도를 같는다.


그러나 니체와 같은 철학자는

내가 정상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다.


권력을 차지해야 하며

나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한 작업에서 종종 그들은

윤리적 가치가 약한 도덕심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로 윤리적 가치 내지

기독교에서 내세웠던 포용적 가치가 약한 것인가?


그 사회를 유지했던 도덕적 가치들은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수정의 대상일 뿐이다.


무언가를 뒤엎는 것은

그저 어린아이의 방 어지르기에 불과하다.



지극히 현대 사회의 형태가 그러하며,

대형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목록들이 그러하다.


끊임없이 자존감을 채워주려 하고,

'내가 제일 소중하다'라고 말해준다.


누군가의 끄적임으로 위로받기만을 원하며,

온전히 나의 가치를 위해서 살아가라고 독려한다.


그들에게는 추석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PC방에서 받는 특별 게임 이벤트가 중요하다.


또한, 너를 사랑해서 배려하는 것보다

내 사랑 방식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내면의 화를 억누르고 말로 대화하는 것보다

한순간의 표출이나 복수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명절 간 해외여행객은 증가했고,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으며, 길거리 칼부림이 사회의 문제로 떠올랐다.


내가 중요한 한에서

사회의 도덕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존재는 나로서 확립되어야 하지만

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여기 있는 한

이곳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진정 나의 의지와 힘을 실현하는 사람은

타인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처럼 도덕적 가치를 지킨다는 것과

'약함'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각자에 대한 기존 규정의 철폐는

비도덕적 삶에 대한 정당화가 아니다.


그렇게 어지르기만 하는 철학자 혹은 저자들은

도무지 스스로 방을 정리하려 하지 않는다.


사회가 분해된 곳에서 살아보지 않고

그곳을 동경한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땅이

그 가치들의 존립으로 유지되어 왔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 대한민국의 지하철에서 

방검복을 입은 경찰이 상주하는 것을 상상하지는 못 했던 것이다.



결국 자유를 위한 해체 요구는

주체에 대한 포기 선언과 같다.


주체를 확보하려 자유를 선언했지만

그 속에서 곪아버려 주체가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회에 지켜내고 있는

도덕이 그런 것이다.


현재의 도덕은 주체들의 결속으로 형성되었고

주체들에 의해 변형될 수 있다.


그렇기에 개인의 존립과 자유를 위해

기존 가치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은 주체를 포기함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사회의 윤리와 도덕을

부숴야 한다기보다 수정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진정한 강함은 '누군가를 밀어내고 혼자 독차지하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기에 서로를 지켜내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유 속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결정해야 한다. 기존의 모든 제도가 붕괴했고,
예전에 확실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 자유는 기쁨인 동시에 공허함에 빠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모두가 스스로 자신을 돌보도록 하라. 무엇이 규칙인가? 누가 책임자인가?"
(프리드리히 쇼를렘머, Elliott 1999: 156-57에서 재인용)

앤드류 보위, 『독일 철학 개론』, 김지호 역, p.16.


작가의 이전글 사물과 비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