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공작산 수타사 생태숲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하여
산세가 마치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공작산. 한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공작산의 유려하면서도 아늑한 산자락 아래 자리한 천년 고찰 수타사는 그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수려한 산세와 맑고 푸른 계곡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 아름다움을 지켜나가고 있다.
홍천 소노캄 비발디가 이번 여행의 숙박지이기에 근처에 있는 공작산 수타사 생태숲을 검색으로 찾아 큰 기대 없이 달려갔다. 공작새가 깊은 산속 어딘가에서 화려한 날개를 펼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며 수타사로 향했다. 수타사에는 중국집 수타면의 장인이 염불을 올리고 있을까 하는 유치한 농담을 양념으로 곁들였다. 가파른 산을 타고 올라가면 조그마한 산사 하나 있겠지? 별 볼일 없음 여기까지 달려온 보람도 없이 시간 낭비인데? 하는 우려까지 덤으로 얹고.
그런데, 진짜 그런데이다.
평지의 순탄한 도로가 끝나자 이곳이 제법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임을 시사하는 식당과 카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차료 무료, 입장료 무료라 가벼운 지갑들이 안심한다. 대문에 발을 딛는 순간 청량한 공기와 고소한 흙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몇 걸음 내디디니 울창한 나무로 그늘을 만든 오솔길이 우릴 오라 손짓한다.
"어머, 여기 너무 좋다."
"그러게요. 내가 가보자고 했는데 실망할까 봐 혼자 마음 졸였네요."
"그러셨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데 실망하면 또 어때요? 괜한 걱정을 하셨네요."
배려와 존중으로 서로를 다독인다.
수타사 가기 전 숲 속 쉼터가 놓여 있다.
'월인쉼터'
달빛 아래에서 사람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내 맘대로 해석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이 병정처럼 호위하며 서있다. 짙은 녹음 속에서 편안한 쉼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쉼터 안에 들어서니 생각보다 큰 규모였고 판매하는 다기들이 즐비하게 줄을 서 있다.
"여행을 가면 눈으로 구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차 한 잔 하며 소담 소담 이야기하며 쉬어가는 타임을 빼먹지 않아요."
캠핑 매니아면서 자유로운 영혼의 동료 K의 말에 꽃처럼 웃는 동료들을 보니, 마침 우리 밖에 없는 쉼터가 내 집 거실처럼 편안하다.
인생이라는 여행길도 마찬가지이다. 앞만 보면 달려가는 마라톤이 아니라 내 옆의 사람들과 함께 도란도란 얘기하며 함께 가야 더 좋은 길이다.
통창을 앞에 두고 앉으니 뜰 안의 벤치와 키 큰 나무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연잎빵과 함께 각자 취향껏 고른 차로 산사의 운치를 오감으로 만끽한다. 산사에 걸맞은 한방차를 마다하고 아아와 라떼를 선택하는 걸 보면 우리의 입맛은 커피에 많이 중독된 것 같다. 나이 순서대로 토마토주스를 골랐다며 몸에 좋은 것을 고른 것이 신기해서 꺄르륵 웃음 방울이 터진다.
내가 우리 손주들에게 먹을 걸 줄 때마다 이거 몸에 좋은 거야 했더니,
"할머니, 이것도 몸에 좋은 거예요?"
뭐든지 먹을 때는 이렇게 묻는다 하니 또 한 번 싱그러운 폭소가 심장을 간지럽힌다.
본격적으로 숲길을 걸어가니 공작 네 마리가 앉아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규모가 꽤 큰 '수타사'가 단정하게 앉아 있다.
고풍스러운 전각과 아름다운 자연으로 천년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수타사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영귀미면에 위치한 천년고찰 ‘수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왕 7년(708)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알려졌다. 당시에는 우적산에 창건하여 일월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고종 15년(1878)에 슬픈 이야기를 현실에서 성취하고자 원력을 세워 정토세계에서 무량한 수명을 누리라는 뜻으로 수타사(壽陀寺)로 사찰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완전히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그 후 인조 때 중건하여 지금까지 고풍스러운 전각과 아름다운 자연으로 천년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수타사.
여느 사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갈하면서도 소박하고 신비로운 수타사를 뒤로 하고 생태숲으로 들어섰다. 수타사 정원치고는 규모도 크고 고즈넉하니 산책하기에 너무 좋았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생태숲을 거니는 사람은 우리와 연못 벤치에서 쉬어 가는 노부부 밖에 없었다. 구석구석 아름드리나무와 잘 깎아 놓은 잔디밭길. 중간중간 연못과 정자가 있어서 운치를 더했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물론 마침 그 시간, 그 공기, 그 바람, 그 사람들이 다 맞았기에 최대치의 만족도를 끌어냈으리라. 다음에는 간다고 같은 감흥이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기대치가 낮으니 만족도가 많이 높다. 홍천에 이런 명소가 숨어 있는 줄 우리는 몰랐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평일 오후에 직장을 벗어났고, 게다가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들뜸이 우리를 소녀로 만들었다. 가는 곳마다 퐝퐝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점점 진화되는 포즈를 짓고 있는 낯선 자신의 모습에 또 깔깔거리며 숲의 매력에 흠뻑 매료되었다.
해가 지면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 모범적인 삶을 사는 우리이기에 뉘엿뉘엿 해가 지니 마음이 급해진다.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어둠은 공포스럽다. 그래서 더 깊숙이 생태숲의 속살을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그래야 또다시 이곳을 찾을 거라며 마음 한 조각을 앙증맞은 새 집에 몰래 숨겨둔다. 생태숲의 시그니처 명소인 불도화 터널에 불도화가 이미 다 져 버려서 아쉬움과 함께 내년에는 꽃이 한창인 계절에 반드시 다시 찾으리라 무언의 눈길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서둘러 오늘 하루 우리 집인 '소노캄 비발디'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무쇠로 만든 네발로 굴러 굴러가는 길은 아직 남은 숙소에서의 여흥을 계획하며 탱탱볼처럼 통통 튄다.
역시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 보다 누구와 함께인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