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족 여행
*씨 집안의 며느리가 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설 명절에 제사를 모시지 않고 가족 여행을 떠났다.
명절에 기름냄새 안 맡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중력이 사라진 듯했다.
공항은 예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설렘을 안고 모여 있다.
사상 초유의 가족여행이 성사된 데는 우리 어머니의 염원에서 시작되었다.
구순에 유명을 달리하신 시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적에 시댁 형제자매들과 손주들 가족까지 일개 대대가
제주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중풍을 살짝 맞으셔서 왼쪽에 마비가 오셨기에 지팡이에 의지하며 힘겹게 다니셨지만 평생 그렇게 환한 얼
굴을 뵌 적이 없었다.
"아이고, 좋다. 여기도 좋으네"
연신 싱글벙글하시며 신기한 탄성을 자아내시던 아버지와의 여행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식구들이 모일 때마다 어머니의 제주도 여행 타령이 시작되었다.
"그때 니 아버지랑 갔던 제주도 참 좋았는데..."
그건 또 한 번 제주의 바다를 그리워하시고, 기실 영감님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망부가라는 것을 모
르는 가족은 없었다.
그럼 가야지!
가면 되지!
가자!
가즈아!
연일 시끄럽지만 싫지 않은 가족톡 알림음으로 한동안 폰이 뜨거웠다..
어머니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니 이루어드려야만 하는 역사적 사명감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야호.
제주...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사는 섬이 아닐까?
언제나 떠나고, 머물고 싶은 아일랜드.
그곳에는 아버지의 발자국도 남아 있었다.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아련한 눈동자와 얕은 신음 소리에 그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두 분은 특히나 금슬이 좋으셨다.
법 없이도 사는-무법자는 아님-아버지와 야무지신 어머니는 환상의 복식조이셨다.
인근에서 소문난 미남 미인이셨기에 두 분의 결혼식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세기의 결혼식'이었다고 한다.
진짜 두 분의 결혼식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배우 뺨치는 미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월의 질풍에 깊게 파인 주름살과 검버섯이 뒤덮인 두 분의 지금 모습으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옛적 미모가 바탕색으로 남아 있지만.
아, 두 분도 저렇게 빛나던 시절이 있으셨구나.
아, 두 분도 피가 끓고 뜨거운 심장으로 잠 못 이룬 청춘이셨구나.
이제 어머니도 구순이시다.
이번 여행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동행은 아니기를 소망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지는 자신이 없다.
그러기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아지 못할 애잔함이 해풍과 함께 나를 휩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