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향일함에서 만나다
추억의 7080 세대를 떠올리면 꼭 등장하는 인형이 있다.
눈 막고, 귀 막고, 입 마저 닥친 트리오 인형
관광지나 레토르 감성 풍기는 가게에 가면 지금도 심심찮게 그 아이들을 만난다.
요즘 얘들을 만나면 반갑구먼 반가워요~하며 손 악수라도 하고 싶지만,
갈래머리 학창 시절에는 무척 싫어했다.
며느리 시집살이를 상징하는 듯한 모양새에 일단 반감이 생겼다.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여자라는 이유로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한다는 걸 인형에게 프레임을 씌운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인형이 이렇게 못생겼냐고 타박을 했다.
친구들 집에 가면 종종 책상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밀어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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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여행 마지막 날.
여수향일암에 올랐다.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고행의 계단길에서 귀여운 아기보살을 만났다.
시집살이 트리오의 동자승 버전이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리
법구경
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법구경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들어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물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배워 익혀야 하리
법구경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인형이 상징하는 것은 단지 시집살이의 고단만이 아니었다.
눈이 2개, 귀가 2개, 입은 1개를 만든 신의 깊은 뜻을 며느리가 아닌 시어머니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겠다.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입은 다물수록 좋다.
나이가 들수록 아집은 커지고 자기가 편하고 듣기 좋은 말만 골라 듣는다.
두 귀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되 한 입으로는 말을 가려서 하라는 경계의 뜻이다.
주머니는 열되 입은 닫으라고 하는 말은 많이 베풀고 나누되,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행해지는 언어폭력 즉 전문용어로 ‘잔소리’를 줄이라는 삶의 교훈이다.
동자승의 수어에 동의한 동전의 수도 불언, 즉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곳에 제일 많이 붙어 있다.
너무나 뻔하고 흔한 진리지만 그렇기에 쉽게 흐트러지고 당연하게 어기게 된다.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탄식하듯 읊조린 말이 여수 향일암의 계단에 메아리친다.
다변도 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