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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3막 치얼스

쓰는 사람

by 정유스티나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생의 주기를 크게 3 분할한다면 탄생부터 결혼 전이 1막, 결혼 후 육아 및 장년기를 숨 가쁘게 살아내는 기간이 2막, 은퇴 후 요단강 건너갈 때까지를 3막. 물론 나만의 인생 설계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는 80을 넘어 생존 가능성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다는 통계를 본 기억이 난다.

흔히 60을 제3의 청춘이라고 하며 돌아온 청춘을 만끽하느라 발바닥에 불이 나고 집집마다 곰국 끓이는 냄새가 골목을 메운다. 남아있는 남의 편이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 최소한의 예의와 인정이다.

활동 무대를 글로벌로 넓혀서 해외여행도 많이 떠난다.

나도 질세라 환갑이라는 생애 전환기를 맞이하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조급함에 해외여행 계획을 빽빽하게 세웠다.

북유럽, 터키, 발칸 5국, 이탈리아 일주, 스페인 일주, 마지막 정점은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하기!

성경 말씀에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고 했지만 나는 정반대의 환갑을 맞이했다.

역대급 팬데믹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오호라 통재라.



세계가 멈추었으니 눈을 국내로 돌렸다.

그러면서 팔순을 넘기신 친정엄마와 함께 하는 국내 여행을 기획했다.

월 1회 마지막 주말에는 나의 애마가 부산으로 달려갔다.

전날부터 잠을 설치고 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곱게 분칠하고 기다리는 엄마에게 '야 타!'가 아닌 정중하게 모시고 우리의 여행지로 떠났다.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드는 여행이었다.

진도, 여수, 광양, 담양, 울산, 변산, 군산, 거제, 해남, 보성, 목포.

1월은 폭설로 인해서 멀리 떠나지 못하고 부산 기장의 해동용궁을 찾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5시간 운전 후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여행지까지 최소 3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되돌아보니 기적이고 사랑이었다.

엄마는 오고 가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니들 어릴 때 엄마는 산후병으로 아파서 죽네사네 했기에 니들 아버지가 장 다 보고 애들 병원에 다 데리고 다니셨다. 니들 옷도 니들 아버지가 다 사 왔고. 나는 아무것도 몰랐데이."

"아이고, 울 엄마. 아주 공주마마셨네? 아버지가 그렇게나 가정적이셨다고?"

가는 장소마다 엄마 왕년에 양장점에서 한 벌 쫙 빼입고 엄마 친구들과 함께 택시 대절해서 다 다니셨다며 자랑도 하셨다.

"우리 엄마도 한 시절 날리셨네? 엄마 이참에 우리 라떼 한 잔씩 합시다."

귀에 피가 나도록 신바람 나서 지나간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회상하시느라 휴게소에서 쉬어 가자 해도 손사래를 치셨다.

"나 소변 안 매렵다."

아마도 맥을 끊지 않으려는 엄마의 귀여운 계획이었으리라.

환갑이 되면 가려고 아껴 둔 해외여행은 하나도 가지 못했지만 나는 엄마와의 추억을 트럭으로 쌓았다.

무엇보다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기에 나에게도 소중한 날들이었다.

인생 3막의 서장을 의미 있게 연 나를 위해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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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정한 치얼스는 따로 있다.

바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읽기만 하던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살려고 결심한 것이다.

'작가'라 하면 하늘이 점지해 주신 재능을 타고 난 사람만이 따는 월계관인 줄 알았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앞에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붙는 사람에게 붙이는 한정판이다.

나는 가볍게 수식어를 뗀 그냥 '작가'가 되고자 한다.

그냥 쓰는 것이 좋다.

누가 봐주지 않아도 비록 이름을 날리지 않아도 나는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동네 놀이터에서 손주 봐주고 있는 할머니로만 늙어가고 싶지 않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 날. 우리 손주들이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축하해 주었다.

"할머니, 브... 브... 작가. 할머니 브... 뭐라고 했어?"

"브. 런. 치. 작. 가."

"아하. 할머니 브런치작가 되신 것 축하드려요."

여섯 살 쌍둥이 손주가 쌍으로 외치는 축하 소리에 허파에 바람이 심하게 들어갔다.

"앞으로 할머니라고 하면 대답 안 해요. 정작가님하고 불러요."

"네! 정작가님!!"

이렇게 한껏 잘난 척을 하며 찧고 까불었다.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의 거품이 가라앉기도 전에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랍고 신기했다.

그 말은 나의 둔재에 당황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으며 하늘의 이치를 아는 나이가 되다 보니 좌절은 하지 않는다.

그냥 즐길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들판을 환하게 밝히는 이름 모를 들꽃처럼 나 홀로 빛나리라.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흐르는 시간들을 붙잡을 것이다.

초록별 여행을 마치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글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게 내 인생 3막의 진정한 치얼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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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만 해_연재글을 마치고


지난여름 벼락처럼 매거진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다.

큰 계획도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매거진에 대한 윤곽이 드러났다.

나의 좌우명이 '못 먹어도 고! 일단 지르고 보자!'로 바뀐 것은 60고개를 힘들게 넘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기회가 되었을 때나 내가 하고 싶을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해 보기로 작정하고 준비태세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거진에 노크를 하고 고맙게도 문을 열어 주셔서 냉큼 들어왔다.

참가하시는 작가님들의 글을 보니 상당한 수준인 분들이 많아서 괜히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꽃밭의 꽃이 모두 해바라기나 장미만 있으면 무슨 맛이겠는가.

맨드라미도 있고 채송화도 있고 가끔 잡초도 있어야 조화로운 멋이 있다.

채송화 같은 소박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짜증 나고, 짜증 나고, 힘든 일도, 힘든 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꿈이 크고 고운 마음이 자라는 따뜻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넌 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세요 동요 패러디-

별생각 없이 맞이한 숱한 여름의 하나처럼 떠나보냈을 이 여름을 이렇게나 시원하고 특별한 계절로 기억하게 된 것은 순전히 매거진 덕분이다.

용기 내길 잘했다고 나를 토닥이며 다음 매거진인 가을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어가기에 그 길은 이미 아름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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