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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치얼스 -

애셋맘의 여름은 뜨겁게 치열했지만, 행복했다고 -

by 온오프

2021년 8월, 첫째를 품에 안으며

나는 비로소 엄마가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 삶이 이렇게까지 송두리째 달라질 줄은.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산후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내 하루하루를 짙게 물들였다.
어둡고 무거운 마음이 나를 집어삼키려 해도,
나는 엄마라는 이름 하나로 간신히 버텨내야만 했다.


삼남매를 키운다는 건 언제나 내 상상보다 더 치열했다.
뭐든 세 배, 아니 삼백 배쯤은 더 힘겨웠다.


사람들은 집에만 있으면서 세 끼를 챙겨 먹는 남편을 ‘삼식이’라 부르곤 한다.
하지만 내게는 그 세 끼조차 아이들 수만큼

곱절로 늘어난다.
밥도 반찬도 늘 더 많이 요리해야 했고,
세 명의 서로 다른 입맛을 맞추는 일도

결코 쉽지 않았다.


“엄마, 나는 국에 말아줘!”
“엄마, 이거는 먹기 싫어. 계란 줘!”


식탁 위는 늘 다른 요구들로 분주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우스갯소리로
내 꿈이 천수보살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의 손은 두 개뿐인데,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더 많은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종달새 같은 아침형 인간이었다.


첫째가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아침 7시 이후로 일어난 날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나는 원래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하루는 언제나 분 단위로 쪼개졌다.
잠시라도 느슨해지면 금세 무너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매 순간을 붙잡았다.
그렇게 해서만 엄마라는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결국 아이들 앞에서 펑펑 울음을 터뜨린 날 -


“엄마 울지 마. 엄마 울면 나도 슬퍼요.”


내 눈물보다 더 슬픈 얼굴로

함께 울어주던 아이들을 보며,
죄책감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렸다.

내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흔들렸다.


처음으로 아이의 엉덩이를 두어 번 때린 날,

나는 생각했다.


‘나 같은 엄마는 없는 게 낫겠구나.’


그 순간, 나는 더 깊은 우울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참 예뻤다.
나를 바라보는 눈망울도,
내게 건네는 귀여운 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럽기만 했다.


어떤 힘든 날에도 나는

아이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지쳐가던 날에도

아이는 유일하게 내가 웃는 이유였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끝없는 구덩이 앞에 위태롭게 서 있을 때,
나를 붙잡아주던 존재가 아이들이었다는 걸.
내 바짓가랑이를 꼭 잡고 늘어지며,
엄마를 포기하지 않던 게 바로 내 아이들이었다는 걸.



어느 날, 우연히 한부모가정 아이의

상처 난 마음을 마주한 적이 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아이들에게

엄마 없는 고통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내 어린 날, 그 결핍으로 버텨야 했던 하루하루를
다시 내 아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바닥을 기어다니던 아이가 이제는 내 손을 놓고 걷는다.
이제는 저 멀리 뛰어가며 나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아이는 자라고,
엄마도 함께 자란다.


나는 더 잘 자라야 한다.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은 꾸지 않는다.
다만 언제나 곁에 있는 엄마,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엄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이 내 유일한 꿈이다.


유난히 뜨거웠던 이 여름에도
나는 매일매일 치열하게 버텨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조그마한 이 녀석들이 자라
내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잔을 부딪칠 그날까지.
그날의 치얼스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살아낸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만 해]

매거진을 마치며 -


작가님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 매거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자

오래도록 간직될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한 계절을 주제로

그 안에 다양한 소주제를 담아낸 글들.

각자의 개성을 살려 써 내려간 모든 문장들은

무더운 여름에도 글을 이어갈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청량한 가을 하늘을 마주하며

함께한 모든 작가님들의 행복과 안녕을 빌어봅니다.

그리고 끝까지 이 매거진을 함께 읽어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의 시간 속에

우리의 글이 잠시 머물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쁩니다.


다음 가을 매거진을 준비하며,

트렌치코트 한 벌 주문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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