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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부치는 편지

아버지께

by 정유스티나

아버지, 저 애야예요.

제 이름 두 글자를 아버지에게 들어본 기억이 없네요.

항상 마지막 글자인 '애',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애야'라고 불러 주셨지요.

해마다 이 가을에서 겨울로 지나가는 계절이 되면 아버지가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요.

아버지는 봄꽃이 피어나는 따스한 날에 하늘나라에 가셨는데 추운 바람이 불면 아버지의 사장님 배에 얼굴을 묻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아버지, 저 애야예요.

대학 진학을 앞둔 몇 해 전부터 아버지의 사업은 내리막길이었죠.

늘 큰 산처럼 든든하던 아버지가 무너지는 것을 저도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시는 것을 한 번도 안 보고 자랐는데 그즈음에 간혹 다투는 소리가 아주 낮게 들렸어요. 우리가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조심하셨지만 무거운 집안 공기가 백 마디 말보다 더 데미지가 컸지요.

아마 그때부터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하게 무너지신 것이.



아버지, 저 애야예요.

대학 입시 원서를 쓸 때가 생각나시나요?

집안 형편을 생각하니 서울 유학이나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힘들다 생각했지요.

그래서 2년 제이고 등록금도 아주 싼 교육대학교에 원서를 쓴다고 했어요.

담임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에 급하게 방문하셨죠.

"우리 반에서 1등 하는 아이가 4년 제 대학에 원서를 안 쓰겠다고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해서요."

"......"

아버지의 낯빛이 점점 흑색으로 변했지요.

"4년제 대학에 원서를 쓰겠습니다."

아, 아버지.

네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니 너는 니 갈 길을 가라.

철없던 나는 그 말을 냉큼 주워 먹고는 4년제 그것도 서울로 원서를 썼어요.

그리고...

원래의 내 자리인 듯 교육대학에 합격했어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딸을 믿고 지지해 주셔서 나의 청춘은 가엾지 않았어요.



아버지, 저 애야예요.

사업을 정리하고 집을 줄이고 마지막에는 결혼한 오빠네 집에 의탁하셨지요.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버지께서 보란 듯이 재기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빠집으로 이사하시는 부모님을 뵈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아버지, 그때의 연세가 지금의 저보다 어린 나이셨어요.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해 보니 아버지의 노고와 상심을 조금 일찍 눈치챘습니다.

비틀거리는 걸음 속에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저의 심장을 저몄어요.

월급을 타자마자 아버지와 구두를 사러 갔었지요.

괜찮다, 괜찮다 하시면서도 새 구두를 신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아이고, 이 구두는 아껴 신어야겠다."

"아버지, 아끼다 뭐 된다고? 가죽이라 질기니까 매일매일 신어도 안 닳아."

뾰로통하게 대답했지요.

허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벅차도록 지으시던 아버지.

그 신발 아낄 새도 없이 그 해 겨울에 암선고를 받으셨지요.


아버지, 저 애야예요.

가고 싶은 서울로 대학을 못 보냈고 4년제 대학교에 못 보낸 것을 내내 미안해하셨지요.

아버지 고백하자면 내가 실력이 안 돼서 못 간 거예요. 힛!

아버지 잘못 아니에요.

그런데 아버지, 60고개를 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그것도 내가 가려고 했던 대학. 비록 사이버대학이지만요.

엄마는 벽에 걸린 아버지한테 아침저녁으로 말을 하신대요.

"영감, 우리 애야가 그때 못 간 대학교에 학생이 되었다네요. 거기에서 에뿔인지 뭔지 받아서 장학생도 한대요. 우리 애야 똑똑해요. 당신 닮았어요. 그러니 걱정 마시구려."

아버지, 난 2등도 안 해 봤다고 하시면 그럼 늘 3등만 하신 거네요? 하고 깐족거렸던 애야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이렇게 글도 쓰고 있어요.

브... 뭐라고?

하실 아버지 생각에 웃음이 나지만 여기에 있는 훌륭하신 작가님들과 함께 책을 만들었어요.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만 해. 제목이 재미있지?"

"여름에는 하드가 최고여!"



아버지, 저 애야예요.

이제 또 다른 책의 마지막 글을 쓰고 있어요.

바로 아버지께 부치는 편지글, 바로 이 글이에요.

'가을에는 트렌치코트를 입어야만 해'

제목 근사하지요?

"트렌치코트가 도대체 어떤 옷인겨? 코트는 모직이 최고여!"

아버지, 브런치 작가 되길 정말 잘했고, 매거진에 참여한 것도 아버지의 이끔이신가 합니다.

아버지, 베드로 님, 하느님 얼굴 뵈면서 천국에서 행복하시겠지요?

아버지 빽으로 하느님께 청원 기도 한 번 올려 주세요.

"우리 애야가 좋은 글쟁이가 되도록 해 주세요. 글감이 팍팍 떠 오르고 자판만 보면 손가락이 저절로 춤을 춰고 그래서 우리 애야 이름 석 자가 걸린 책이 서점마다 흩뿌리게 해 주세요. 하느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저 애야예요.

이제 애가 아니고 당신이 떠나신 나이보다 더 많이 살았네요.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애야'로 살아 있을 거예요.

제 마음속에도 '애야 아버지'로 사시니까요.

초록별에서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딸, 애야로 살게요.

그동안 내가 지은 글들을 가득 안고 가서 아버지께 읽어 드릴게요.

나의 유년에 아버지가 나에게 들려주신 동화책보다 재미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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