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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스티나 Jan 05. 2025

브레이크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나에게

3월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첫날, 첫 시간에 아이들과 만나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1년 동안 나와 이 교실에서 평화로우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만들려면 반드시 이 3가지는 약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거짓말을 하지 말자.     

  숙제를 못할 때도 있고, 친구와 다툴 수도 있지만 거짓말로 선생님을 속이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난 너희들의 눈만 봐도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다 안다. 특히 참말을 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다 보이니까 내 눈을 속일 생각은 애초에 꿈도 꾸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로 애들의 눈과 말투, 행동을 보면 다 보인다. 그만큼 영혼이 투명하고 순수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둘째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모든 일에 열심인 사람을 당할 사람은 없다. 지능지수가 높다고 자만하는 아이는 꾸준히 노력하는 둔재를 당할 수가 없다. 비록 결과물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일에 성과 열을 다해서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천성이 게으른 녀석들이 가끔 있지만 주어진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면 자기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 수 있다.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움직이는 물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기차에서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엔진이요!" "바퀴요!" "운전대요!"

  해마다 수많은 아이에게 말하지만 한 번에 답을 찾는 경우는 한 번도 없다. "힌트를 주자면 이것이 고장 나면 큰일 나지요?" 하는 순간 바로 정답이 튀어나온다.     

  "브레이크요!!!"     

  "딩동댕~~~ 바로 브레이크이지요? 달리는 물체가 계속 달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앞에 위험한 물체가 나타났는데도 멈추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맞아요~ 사고가 나고 다치고 죽기까지 하겠지요? 그래서 브레이크 장치가 제일 중요하답니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아이들은 나의 의중을 대충 짐작한다.

  "여러분도 수업 중이나 쉬는 시간이나 장난치고 떠들다가도, 선생님이 “집중” 하는 신호에 브레이크를 밟아서, 하던 행동을 멈추고 선생님을 바라본다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수업이 진행되고 나의 공부 실력도 발전하며 친구와의 충돌도 막아준답니다. 알았지요?"

 "네!" 교실이 떠나가라 우렁찬 대답 소리에 나는 한껏 고무되고, 올 1년도 무사히 생활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한번 말을 했다고 기막히게 말을 잘 들으면 ‘선생 떵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매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 기억시키고 되새김시키는 전문용어로 '잔소리'를 들으며 아이들은 자란다.

  이제 세 번째 청춘을 시작하는 나에게도 브레이크 장치는 필요하다. 너무 앞만 보며 달리지 말고, 들판에 핀 이름 모를 꽃도 보자. 너무 땅만 보고 고개 숙여 걷지 말고, 하늘에 별을 쳐다보는 여유도 갖자. 가끔은 브레이크 장치를 작동하여 쉬어가는 여유를 가지자. 

  늘 분주했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한 조급함에 늘 동동거리며 살았다. 밥 먹는 시간도 쫓기듯이 후다닥 위장으로 밀어 넣는 느낌으로 배고픔만 달래는 수단쯤이었다. 자려고 누워서도 머릿속은 팽팽 돌아가고 있다. 오늘 한 일 반성과 내일 할 일 계획으로 늘 머리는 복잡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반신욕을 할 때도 최소 3가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렸다. 음악 감상과 독서는 기본이고, 머리카락과 얼굴에 팩하기 거기에 덧붙여 때 밀기까지 전문용어로 일타 쓰리 피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무슨 재벌 총수나 국정을 책임지는 고위 관료 직이나 된 것 같아서 머쓱해진다.

  힘껏 잡아당긴 활시위처럼 팽팽한 정신줄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 쉼이다. 여전히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상념의 지푸라기를 싹 비워버리는 것이 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멍 때리기가 진정한 쉼이다. 

수년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해 줬던 말을 이제는 나에게 해 주고 싶다.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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