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2023. 8. 26. 10시 까망돌도서관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소재)
베스트셀러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를 만나는 길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까망돌도서관의 미끈한 자태에 먼저 놀랐다. 이름으로 봐서는 아주 작은 도서관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작나무를 닮은 미끈하고 웅장한 자태에 감탄을 자아내며 입장했다. 마침 자체 행사를 하는 중이라 로비에는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로 붐볐다. 지하 대강연장으로 내려 가니 현수막이 먼저 반긴다.
“정지아 작가와의 만남” 두둥!
첫 인상은 실망이었다. 다소 촌스러운 촌부의 모습 속에서 비범함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칠 때는 정말 유쾌하고 시니컬한 작가님의 매력에 푹 빠졌다. 작가의 필력이 달리는 백마인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공이 단단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작가님의 목소리와 얼굴에서 엿볼 수 있었다.
중앙대 출신이라 흑석동이 추억의 동네인데 상전벽해한 모습에 너무 놀랐다고 한다. 나도 놀랐다. 지역주민들을 위해서는 발전해야 하지만 추억 하나 잃어버린 것 같은 씁쓸함도 있다는 물기 머금은 말로 강연의 포문을 연다. 작가는 다소 싸늘한 시선으로 모든 대상을 바라봐야 고결하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기에 엄청 까칠하고 재수없었었다.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며 꺼져! 아웃을 시킴으로써 빨치산의 딸이라는 신분이 들키기 전에 사람과의 방어벽을 치면서 살았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걸 알면 자신을 내칠까봐 상처받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 때문에 구례살이를 하면서 나눔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구례사람을 통해 사람을 돌아볼 줄 하는 마음을 가졌다. 시골 사람들 특유의 벽없이 훅 들어오는 친절이나 관심에 적잖이 당황하고 불편했지만 그 속에 깔린 참 정을 알기에 세상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사람꼴을 못하고 불시에 타인을 만나는 동네, 내가 입었던 벗었던 전혀 상관없이 들이닥치는 이웃, 거리가 없는 동네, 누구네 딸이라고 다 알기에 행동하나 말투하나 조심해야 하는 동네. 적응하니 있는 그대로 날것의 편안함을 주는 동네이다.
빨치산으로 산 몇 년이 아버지는 물론이고 딸인 본인을 위시하여 친인척을 옭아매는 연좌제로 인해 보낸 세월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초2에 아버지가 다시 감옥에 갔다가 중3에 석방되었다. 가족이 있기에 거의 모든 사람이 전향수로 석방되고 비전향수는 계속 감옥살이를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그까짓 생각이 뭐가 중요하냐? 내가 바르게 살고 옳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되제. 감옥에서 썩으면서 사상만 지킨다면 뭐가 변하냐고 말씀하셨단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이셨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바로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본인의 별명이 가난한 공주, 부모님의 특별하고도 전폭적인 믿음과 사랑속에서 공부도 잘했는데 가난했다. 그래서 가난한 공주란다. 손에 물한 번 안 묻히고 밭일 하나 안하고 공부만 했다.
이 소설을 쓰려고 마음 먹은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엄마를 미워하고 엄마에게 못된 딸이어서 마음도 많이 아프게 해 드렸다. 작가의 엄마가 사회주의자가 된 이유는 첫 결혼한 남자가 사회주의자였다. 강제로 결혼시킨 남자에게 적대감을 갖고 털끝 하나라도 건들면 너죽고 나죽자라는 심정으로 첫날밤을 맞이했는데, 진짜 털끝하나 안건드리는 매너에 반해서 사회주의에 물들었다. 하지만 글을 쓰기 망설이고 세월을 보낸 이유는 5060세대는 빨치산의 존재와 젊은 날의 순수했던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향수? 가 있어서 공감의 폭이 넓겠지만, 2030세대는 빨치산이 지리산 옆의 어떤 산인 줄? 하고 말하는 세대에게 과연 아버지의 이야기가 먹힐까 하는 두려움. 그럼에도 어머니가 장수하시는 바람?에 어머니에게 바치는 의미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고 감사하게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구례에서는 훤칠한 정치가 하나 배출 못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좌파와 우파에게 너무나 시달렸기에 정치라는 정 자만 꺼내도 진저리를 친다. 그냥 완벽한 우파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상처를 덮고 빨치산의 후예들이라는 올가미를 벗어나는 길이라는 본능적인 생존본능이 있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가장 큰 상처는 바로 나의 상처이다. 그래도 5060세대는 부모가 원망스러워도 부모를 나의 삶 속에서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고 그런 부모라도 이해하고 껴안고 효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나를 힘들게 하는 부모는 싫고 나의 삶에서 셧아웃시킨다. 이해하거나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생각만 하는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작가에게 묻는단다.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고 자기가 화가 난다고. 이런 세대에게 과연 아버지, 그것도 빨치산, 나를 옭매는 존재인 아버지 이야기가 먹힐까? 그런데 먹혔다.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잠시 자기로 돌아가는 순간이 필요한데 그것은 달리면서는 불가능하다. 잠시 멈추면 비로서 보인다.-마치 혜민스님의 책 제목?- 구례에서 작가는 멈춤으로써 자기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작가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소설로 돌아와서 첫 시작이 아버지가 죽었다. 라고 한 것은 객관화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냥 이렇게 시작하면 편안하게 시작이 될 것 같아서 라고 한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람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와 구례사람들이 신기했다. 실제로 작가는 이런 아버지가 좋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돈 받아내려고 따라다니며 욕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그 돈을 갚으려고 하는 사람이라 자랑스럽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에 나의 눈가에도 물기가 차올랐다.
“그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 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마음 저 밑바닥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독서 인플루언서의 말을 빌리면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스테디셀러로 남을 것 같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다. 단 한 구절도 재미나지 않은 구절이 없는 소설이다. 평생 책 한 권 안 읽던 울 남편이 하루만에 독파한 책이기도 하기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