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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업보

침묵

by 정유스티나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죄악이 말로 짓는 업보라고 불교 경전에서 말한다.

그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말로 짓는 덕이 제일 큰 복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더욱더 조심스럽다.

평생을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보니, 적지 않게 쓸데없는 말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나는 기억도 없는 수십 년 전, 내가 한 말에 감명을 받아서 평생 나의 곁을 맴도는 제자가 있다.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어느 봄날,

음악시간에 오르간 소리와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열린 창문으로 날아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이 아름다운 봄날의 평화를 깨는 소식이 전화벨을 타고 들려왔다.

"민영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민영이를 집으로 보내 주세요."

울먹이는 민영이 엄마의 전화였고,

울면서 교실 밖을 나가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달려가는 민영의 뒷모습이 애달프게 기억되었다.

6학년, 겨우 13살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었구나.

등하굣길에 자전거 짐 싣는 시커멓고 투박한 앉은 의자에 민영이를 태우고 힘들게 체인을 돌리던

민영이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장례를 다 치른 후 핼쑥한 얼굴로 등교한 민영을 보자마자 꼭 안아 주었다.

"민영아, 많이 슬프지? 민영이가 씩씩하게 공부 잘하고 건강하게 자라길 아빠도 바라실 거야."

어찌 보면 상투적인 위로의 말 밖에 달리 건넬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렀다.

민영이가 결혼해서 나와 만났을 때 나이의 아이 엄마가 되었다.

전혀 소식이 없다가 물어물어 나를 찾아왔다.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그리고 그때의 이야기를 했다. 너무 고마웠다고.

나는 기억에도 없고, 제자에게 그 정도의 말쯤이야 큰 의미 없이 했을 것이지만

민영이는 오랜 세월 가슴속에 품고 힘들 때마다 떠올렸다고 한다.


반대로 역시 기억에도 없는 나의 말 때문에 상처 입었다고 눈물 흘리는 내 딸도 있다.

학창 시절에 진짜 몸이 너무나 아파서 일어나기도 힘든데 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눕더라도 보건실에 가서 누워."

흠. 그렇게 말했을 확률은 높다.

나는 개근상을 추앙한다.

나는 초등, 중등, 고등, 대학까지 올 개근상의 빛나는 상아탑을 쌓았다.

직장 생활하면서도 나의 건강이나 신상 문제로 결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피치 못할 집안일이나 상을 당했을 때 외에는 출근은 신앙처럼 굳건했다.

불필요하고 왜곡된 신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었음을 고백한다.

난 대체로 평온하고 상냥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욱하는 순간이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 애들에게 나의 별명이 욱 엄마인 걸 보면 가끔이 아니라 자주 욱했나 보다.

물론 참고 참다가 욱한다고 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뜬금없을 수도 있으리라.

버럭! 내 지르고 나면 사실 제일 상처를 많이 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공중분해하고 싶을 만큼 나 자신이 싫다.

조금만 참을 걸. 이 말은 하지 말 걸.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이기에 상대의 폐부 깊숙이 꽂혀서 시뻘건 선혈을 흐르게 한다.

말. 말. 말.

칼. 칼. 칼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앎은 '나'의 밖으로 표출되는 순간 병들고 죽는다."

-최인호 부유하는 단어들 중-


부디 나의 말로 상처받는 영혼이 없기를...

부디 나의 말로 치유받는 영혼이 많기를...


요즘 세상에는 웅변이 금이고 침묵은 똥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침묵은 금이다.

어설픈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줄 바에는.

침묵의 위로가 나로 인해 실현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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