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 벚꽃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 들렀다. 저녁에 무슨 국을 끓일까 생각하며 기웃거리는데 햇볕 잘 드는 약국 앞에서 할머니 한 분이 좌판을 벌여놓고 있었다. 냉이며 부추 같은 봄나물 속에 한 움큼이나 된 쑥이 보였다. “어머나! 벌써 쑥이 나왔네.” 망설일 것도 없이 쑥을 사가지고 와서 쑥국을 끓였다. 밥이 뜸 들기를 기다리며 식탁에 앉아있는데 주방 가득 퍼지는 쑥 향속에서 내 어린 시절의 추억 하나가 아련히 피어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가난의 그림자가 길었던 시절, 쑥은 보릿고개를 넘기는데 한몫을 당당히 했었다. 다른 생명체들이 움츠리고 있을 때 쑥은 봄의 전령사처럼 언 땅을 뚫고 나온다. 여느 봄꽃들처럼 우아한 기품도, 흩날릴 꽃잎도 없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발에 밟히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돋아나와 가난한 이들의 먹거리가 되어 준다.
우리 집은 부농에 속해 끼니 걱정은 안 하고 살았는데 올망졸망 식구가 많았던 경심이네는 늘 쑥밥을 해 먹었다. 밥뿐인가. 점심은 고운 등겨를 섞은 쑥범벅에 비 오는 날 먹는 주전부리도 쑥 부침개였다. 나는 쑥밥이 먹고 싶어 가끔 쌀밥을 가지고 밥을 바꿔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학교가 파하면 경심이는 책보자기를 던져 놓고 쑥을 뜯으러 다녔다. 경심이 손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터졌다. 단짝이 쑥을 뜯으러 가 버리면 혼자 놀기 심심해 나도 몇 번 따라다녔다. 어떤 때는 쑥을 캐서 경심이 바구니에 넣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 듣고 싶어서 집으로 가져오기도 했는데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내가 뜯어다 놓은 쑥에 관심이 없었다. 어쩌다 거스러미가 인 손을 보며 “이 놈의 계집애가 뭘 하느라고 손이 이 모양이냐?”라고 한 마디씩 했을 뿐이다. 쑥을 뜯는 것이 내게는 재미있는 놀이였는데 경심이에게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절실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경심이네 집에 놀러 갔더니 옆집 숙자 언니가 머리띠를 만들고 있었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야! 집에 헝겊 있으면 가져와라. 너도 만들어 줄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부리나케 뛰어와 장롱을 뒤졌다. 장롱 밑에서 분홍색 예쁜 천이 나왔다. 소매도 끈도 없는 것이 옷은 아닌 것 같았다. 가위로 한쪽을 잘라 가지고 갔더니 숙자 언니가 머리띠도 만들어 주고 설날 세뱃돈 담으라면서 주머니도 접어주었다.
머리띠에 주머니까지 차고 토끼뜀을 뛰며 놀고 있는데 들에서 돌아오신 엄마가 놀란 토끼 눈으로 “무슨 헝겊으로 주머니를 만들었느냐?”라고 물었다. “장롱 속에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오메! 이 일을 으째야 쓰끄나. 즈그 성 농지기 할라고 보리를 닷 말이나 주고 한복감 끊어 놨든만은 저 못된 것이 다 짤라 부렀네” 하며 부지깽이를 들고 쫓았다.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은 쳤는데 해가 어둑 해지자 혼날 것이 무서워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멀찌감치 남의 집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있는데 마실에서 돌아오던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어허! 우리 막내가 아버지 마중 나왔구먼.”하시며 번쩍 들어 업어 주셨다.
집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아니! 저 기집애를 뭣이 이쁘다고 업고 온다요? 저 것이 오늘 을매나 큰 자작을 친 줄 아요? 즈그 성 농지기 할라고 들여놓은 유똥 저고리 한 감을 다 짤라 부렀단 말이요” 그러자 아버지가 나를 마당에 내려놓으며 “그래? 그라믄 다시 쫓아내야 쓰겄구만. 안 되겄다. 너 입은 옷 다 벗어놓고 나가거라” 하며 내 옷을 벗기는 게 아닌가! 잘못은 했겠다, 뭔가 쫓겨나가지 않을 꺼리를 찾다 내 입에서 불쑥 나온 말은 “좋아! 나갈 테니까 내가 뜯어다 놓은 쑥 값 다 내놔!”였다. 그 순간 식구들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혼자 놀기 싫어 친구 따라 몇 번 뜯어다 놓은 쑥, 더러는 쇠죽 끓이는데 들어가기도 하고 검불에 섞여 아궁이로 들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 쑥 값을 내놓으라니 아버지는 웃음을 참으며 “막내 쫓아내기는 다 틀린 것 같네. 우리가 그 많은 쑥 값을 어찌께 다 물어 내겄는가. 할 수 없이 그냥 데리고 살아야 쓸랑갑네” 하셨다. 그 뒤로 아버지는 집에 오시는 분들께 “우리 막내가 그렇게 야무지단 말일세” 하며 자랑삼아 얘기도 하고 가끔 심심할 때면 “막내야! 어째 돈 없이는 못 나가겄드냐?” 놀리기도 했다.
고운 정 보다 밉고 야속했던 것이 더 많았던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 이어서일까? 그 일을 떠올리면 입가에 웃음이 번지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 흥청거려 멀미가 날 것 같았지만 콩닥거리던 가슴을 기댔던 아버지의 등은 지금까지도 내 가슴에 따뜻하게 자리하고 있다. 부지깽이를 들고 나를 쫓으셨던 엄마는 나랑 함께 살다 아흔세 살에 숟가락을 놓으셨다. 머리띠를 만들어 주던 숙자 언니는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식모살이를 떠났던 경심이와는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문득 경심이가 보고 싶다. 쑥국에 밥 먹고 전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