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이와 진달래

by 에쩨르

친구들과 산에 올랐더니 사방에서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가득했다. 연초록 새 순이 얼굴을 내민 나뭇가지 사이로 진달래도 지천이었다. 앞에도 뒤에도 끝없이 피어있는 진달래 꽃길을 걷다 보니 가슴 깊이 묻어 둔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진달래, 그 분홍빛은 일찍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 복순이를 소환해 그리움과 슬픔의 빛깔로 다가왔다.

복순이는 국민학교 친구였다. 달랑 한 학급뿐인 시골 초등학교, 더구나 우리는 키가 비슷해서 6년 내내 짝꿍이었다. 가난한 집 큰딸로 태어나 동생들 돌보느라고 열 살에야 학교에 들어왔으니 말이 친구지 사실은 언니뻘이었다. 내가 새 옷을 입거나 새 학용품 쓰는 걸 보면 “너는 좋겠다 부잣집에 태어나서...” 하며 넉넉한 집의 막내로 태어난 나를 늘 부러워했었다. 나이 많은 친구답게 쉬는 시간이면 연필도 깎아주고 내 몫의 청소도 대신해주곤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동네에 살았는데 책보자기를 잡아끄는 복순이 손에 이끌려 집에도 몇 번 놀러 갔었다. 많은 식구가 죽으로 연명하는 것을 보니 어린 내 눈에도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보였다. 긴 담뱃대를 물고 시끄럽다고 호통치는 할아버지를 피해 마을 뒷산에 가서 놀았다. 양지바른 그곳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는데 주인 없는 무덤은 미끄럼틀이 되어 잔디가 반들반들 윤이 났다. 복순이는 늘 등에 아이를 업고 있었는데 배고파 우는 동생에게 진달래꽃을 따 먹이며 달랬다.

일찍부터 교회에 다닌 복순이는 내게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천국을 설명할 때면 꿈을 꾸듯 아련한 눈빛이 되기도 했다. 그런 복순이를 보면 내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어른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복순이는 내게 예수님을 소개한 최초의 전도자였다.


졸업식 날, 나는 교실바닥을 흥건히 적신 복순이의 눈물을 보았다. 두툼한 영어사전과 상장받은 기분에 들떠 슬픈 줄도 몰랐는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친구를 따라 울었다. 그러자 그녀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너는 도시로 중학교 갈 텐데 왜 우냐? 나는 교복 한 번 못 입어보고 호미자루 잡고 살아갈 팔자가 서러워서 운다” 팔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천리 도망은 해도 팔자 도망은 못한다”던 엄마 말이 생각나면서 무거운 바윗덩이가 복순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속으로 그녀가 믿는 하나님이 복순이 팔자를 좋은 쪽으로 바꿔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복순이 말처럼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낯선 학교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 때 복순이는 고향 소식 듬뿍 담은 편지로 내 외로움을 달래주곤 했다. 겨울 끝자락이 남아있던 어느 봄날에 봉투 가득 진달래꽃을 따서 보냈다. 내게 봄소식을 전해주고 싶어 한 두 송이 핀 꽃을 찾아 산을 헤맸을 것이다. 그러나 섬에서 배에 실려 오는 동안 수묵화 번지듯 편지지와 봉투까지 붉게 얼룩이 졌다. 꽃 물로 번진 편지 내용은 면 소재지에 진료소가 생기게 되었는데 급사로 취직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듬해 여름, 방학이 되어 집에 갔더니 온 마을이 복순이 소문으로 웅성거렸다. 허벅지가 다 보이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다느니 연애 대장이라느니... 귀 따가운 소문의 진상이 궁금하던 참에 복순이를 만난 나는 깜짝 놀랐다. 외모가 너무 많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훌쩍 커버린 키, 우람한 몸매, 긴 머리를 풀어헤친 복순이는 처녀가 되어있었다.

복순이는 그때도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집회 얘기를 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꿈 꾸는 눈빛이 되었다. 풀 먹인 내 교복칼라를 만지작거리며 “예쁘다”라고 되뇌더니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몇 개월 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집에 들렀다가 복순이 부음을 들었다. 죽음에 대한 소문도 무성했다. 갑자기 배가 아파 진료소에서 수술을 하다 죽었다는데 맹장이 터졌네, 진료소에서 어떻게 맹장수술을 할 수 있느냐... 이런 저런 말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 부모가 다 큰 딸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오며 통곡했다는 말을 듣고 얼음 알갱이를 쏟아부은 듯 가슴이 시렸다.

복순이는 그렇게 떠났다. 그리운 눈빛으로 사모하던 그 나라에 가고 싶어 서둘렀을까? 죽음이 삶의 또 다른 저쪽이라면 하늘나라에서 행복할까? 복순이의 죽음은 정지된 화면으로 지금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오래된 내 앨범 속에는 복순이와 머리를 맞대고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몇십 년 세월이 흐른 빛바랜 사진이지만 내가 사는 날 동안 간직할 것이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를 누군가는 이렇게 라도 기억해 줘야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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