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와 쭈니

by 에쩨르

도시가 떠들썩하게 사춘기를 요란하게 보낸 아들이 검정고시를 통과해 대학에 들어갔다. 질풍노도가 좀 자려나 했더니 여전히 밤낮을 거꾸로 살았다. 한 번은 급하게 들어오더니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생일도 아닌데 웬 미역국? 누가 애 낳았냐?”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친구 창성이 여친이 출산을 했다는 것이다. 벌써 이름도 지었단다. "기쁨"이라고.


창성이는 2학기 등록을 포기하고 원룸을 얻어 빈 집으로 산모와 애기를 퇴원시켰다는 것이다. 기쁨이 할아버지가 목사님이라 소문나면 안되니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달란다. 냉장고와 가스렌지는 옵션으로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침 남편이 지방에서 자취할 때 쓰던 살림 도구가 다락에 있었다. 전기밥솥, 냄비, 그릇, 칼, 도마, 대야, 그릇, 수건, 욕실 용구... 눈에 보이는대로 챙겨놓고 부족한 것을 채우느라 한나절 동안 시장을 돌아다녔다.

미역국이 끓는 동안 밑반찬을 준비했다. 어묵도 볶고 나물도 무쳤다. 이것 저것 챙겨 보내고 나니 피곤이 몰려왔다.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해보겠네"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꼼지락거릴 어린것 생각에 마음은 흐뭇했다.

아들은 처음으로 본 신생아가 신기한지 틈만 나면 기쁨이를 보러 다녔다. “엄마! 오늘 기쁨이가 웃었어요. 진짜라니까요. 오늘은 기저귀 채우는데 오줌이 분수처럼 솟았어요. 어떻게 애기 방귀 소리가 그렇게 클 수가 있어요?” ‘어떤 녀석일까?’ 매일 얘기를 듣다 보니 살며시 기쁨이가 보고 싶어졌다.

아들은 내 속내를 읽었는지 기쁨이 사진을 가져왔다. 아이 키우느라 방에만 있는 기쁨이 엄마 바람 쐬주려고 공원에 나갔단다. 그런데 정작 그 부모는 연인들처럼 손잡고 다니고 우리 아들이 아기 띠를 매고 있지 않는가. 교우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그랬다는 것이다. “야! 장가도 안 간 놈이 아이 안고 다니다 혼인 길 막힐라”웃고 넘겼다.

사실 기쁨이 할아버지는 안면이 있는 목사님이다. 몇 년 사이 교회가 두 배로 성장할 정도로 목회에 성실하신 분이다. 그런데 지난여름에 큰 아픔을 겪었다. 청년부 수련회를 갔다가 큰아들을 잃었다. 물에 빠진 친구를 보고 뛰어들었다가 익사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교사로, 찬양대로 섬기며 칭찬을 달고 자란 아이였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애기 목사로 불릴만큼 반듯한 청년이었는데 친구를 살리고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목사라서 성도들 앞에서 티도 못 내고 숨 죽여 슬픔을 삭였을 것이다. 사택에는 불 꺼진 시간이 많고 식구들은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고 한다.

집안이 그 지경인데 둘째가 사고를 친 것이다. 제 딴엔 목사 아버지 체면 세워준다고, 기숙사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막노동을 하며 아이를 키웠다. 기쁨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뒤집고 앉고 서고... 우연한 기회에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쌍꺼풀진 눈이며 웃는 표정까지 할아버지를 쏙 빼닮지 않았는가.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쉬쉬했는데도 말이 새고 말았다. 그런데 기막힌 시점에 터졌다. 큰아들 1주기가 다가오자 어떻게 넘겨야 할지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하던 참이었다.

밖에서 손자가 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사모님이 단숨에 달려가 아이를 데려왔다. 손주를 본 목사님 얼굴에 1년 만에 웃음이 번졌다.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은 생명이 떠난 자리를 생명으로 채워주셨다. 그동안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네지 못한 성도들이 더 기뻐했단다. 자칫했으면 목사 아들이 사고 쳤다고 비방거리가 될 수 있었는데 경사가 되었다. "잘했다! 잘했다!"성도들이 번갈아 등을 두드려주는 바람에 기쁨이 아빠는 쑥스러워 고개를 못 들고 다닌단다. 기쁨이는 뒷짐 지고 걷는 할아버지 흉내를 내며 졸졸 따라다닌단다. 아이의 재롱에 집안에 웃음소리가 그칠 날이 없다니, 고 녀석 이름값 한번 제대로 한다.

기쁨이네 부모는 늦은 결혼식을 마친 뒤 시댁으로 합가했다. 학생이 애기부터 덜컥 낳았지만 전화위복,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겨울이 되었다. 늘 지갑을 털어가던 아들 녀석이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나다녔다.
“공사장이라고? 추운데 뭔 일이래? 배낭여행이라도 갈 참이냐?”
“돈 쓸 데가 있어서요.”
“그러니까 어디에 쓸 거냐고?”
“아따,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물으세요?”
“너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냐?”
“그게 무슨 말인데요?”
“대학생이라는 놈이 그것도 몰라? 말 그대로 남의 산에 있는 돌로 내 돌을 다듬는다는 뜻이야. 더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일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 말을 하는 거냐고요?”
“갑자기가 아니라 너는 기쁨이네 보면서 배운 게 없냐? 세상 모든 일에는 계단을 오르듯 순서가 있는 법이거든. 학교 마치고 직장에 다니면서 준비한 다음에 결혼을 해야지, 아이부터 가지니까 모든 게 엉망이 되잖아. 친구를 보면서 잘 배웠을 테니 그 일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 했더니,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흠칫했다. 표정이 아리송했지만 그 뜻을 알아들었으면 됐다 싶었다.

며칠 뒤, 아들 녀석이 상담할 일이 있다며 음료수를 건넸다. 사연인즉슨, 또 다른 친구가 사고를 쳐 임신을 시켰단다. 그 어머니는 바른생활 아줌마로 도저히 그런 일을 용납 못할 사람이라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고 일을 다닌다는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네 친구들은 다들 왜 그 모양이라니? 힘들게 대학에 들어가서 그게 할 짓이냐?”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만약 입장 바꿔 엄마 일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당연히 애를 낳아야지. 어찌 됐건 생명은 귀한 거야.” 잠시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런 다음 길게 부연 설명을 했다. “책임질 일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어떻게 지들 맘대로 생명을 없앨 생각을 해? 감히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할 수 있냐고! 친구 누구야? 내가 그 집 부모 만나서 얘기할 테니까 성급한 행동 하지 말라고 해” 그러자 “대쪽 어머니께서 웬일이세요? 남의 일이라고 상당히 너그럽네요? 알았어요. 친구에게 그렇게 말할게요”하며 나갔다.

그랬는데 보름 후쯤 일이 터졌다. 지난번 상담했던 주인공이 친구가 아니고 바로 지 놈이라는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혀도 유분수지 어이없고 황당했다. 돌이켜 보니 수상쩍은 일도 많았는데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여자 친구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수술비 마련하려고 일을 하러 다녔단다. 내 반응을 보려고 넌지시 떠 봤는데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에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려고 모은 돈으로 임신복도 사고 몸보신도 시켰다는 말을 들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문득 타산지석에 대해 길게 설명했던 일이 생각났다. “야! 타산지석에 대해서 말할 때 찔리지도 않던? 어떻게 그렇게 시치미 떼고 능청스럽게 듣고 있었냐?” “아따, 엄마가 느닷없이 그런 말을 하니까 뜨끔했죠. 무슨 눈치를 챈 줄 알고 놀랬다니까요.” “에라, 이 나쁜 놈아! 그 일이 그렇게 좋아 보여 따라 했냐?”며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자칫 학생이 무슨 애를 낳느냐고 함부로 말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자격증도 없으면서 상담 한번 끝내주게 잘했다.

우리나라는 오이시디(OECD) 국가 중에서 낙태율 최고, 출산율 최저라고 한다. 낙태를 가볍게 여기는 풍조인데 아이를 살리기로 했다니, 고마운 마음에 며느리 될 아가씨를 불렀다. 분홍색 가디건을 걸친 다소곳한 모습이 내 맘에 쏙 들었다. “어머나! 내 며느리 되려고 어디서 꼭꼭 숨어 이렇게 예쁘게 자랐을까. 그런데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어떡하나! 내가 낳았지만 우리 아들 별론데.” 아들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첫인사를 했다. 한 송이 꽃이 피는데도 소쩍새와 천둥이 우는데 하물며 생명이 잉태되기까지 무한한 섭리가 있었음을, 이 세상에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도 많고, 아이 하나 낳는 것이 평생 소원인 사람도 많다고, 이번 결정이 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될 거라고 길게 칭찬을 해 줬다.

며느릿감을 보고 나니 그 부모가 걱정되었다. 며칠 뒤 그 부모와 만났는데 염려했던 대로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잘 한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애를 낳기로 했다니까 우리가 받아주자고 사정했다. 예쁘게 키운 딸 넉넉하게 품어 주겠다며, 그쪽에서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배 불러오기 전에 결혼식을 하기로 하고 급하게 날을 잡았다. 그렇게 서둘러 며느리는 오월의 신부가 되었다.

학생 신랑을 만났으니 우선 함께 살기로 하고 신혼 방을 꾸몄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괜히 서러운 시집살이, 몸도 무거운데 얼마나 힘들까 싶어 부지런히 밥을 해 먹였다.

그렇게 달을 채워 건강한 손자를 봤다. 쭈니(준휘)는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집에 웃음을 가져왔다. 장가가면 철난다더니 밖으로 돌던 아들이 부쩍 아빠다워졌다. 퇴직해서 무료하던 남편도 아이 씻기고 먹이고 베이비시터가 되었다.

1년 후, 아들이 취업해 분가했는데 쭈니는 친가 외가를 넘나들며 재롱둥이 노릇을 하고 있다.

쭈니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뇌를 시켰더니 “할머니는 누구?” 하면 “생명의 은인이요” 한다. 한 번은 그 뜻이 궁금했던지 “할머니! 그런데 생명의 은인이 뭐야?” 하기에 아주 많이 고마운 사람이라고 해놓고 한바탕 웃었다.

기쁨이는 여덟 살로 학생이 되었고 쭈니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나이는 두 살 차이인데 둘 사이엔 서열이 분명하다. 기쁨이는 쭈니를 숫제 애기 취급이고 쭈니는 깎듯이 형아라고 부른다.

며칠 전 바닷가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아들 친구들을 만났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기쁨이와 쭈니도 뛰어다니고 있었다. 두 녀석 모두 속도위반 딱지를 달고 나와서인지 달리기도 잘한다. ‘건강하게 자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 되거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러 보인다.



제 9회, 생명 윤리 수기 공모, 대상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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