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봉이는 도둑고양이가 맞았다.
"도둑고양이란 말 쓰지 마."
라고 말하니, 남편은 억울하단 듯 반론했다
"근데 걔는 진짜 도둑짓을 한단 말이야!!!!!"
회사에 고양이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중장비와 5톤 트럭이 종횡무진하는, 곳곳에 기름때 낀 부속품들이 굴러다니는 우리 회사엔 고양이가 있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풍경일 것이다. 하지만, 원남과 영심이가 그 당연한 풍경을 당연하지 않게끔 바꿔놨으며, 홀연히 떠난 자리에는 허전함만이 가득 남았다. 그렇게 두 번의 계절을 헛헛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 사이, 원남을 이긴 대장냥이(이하 두남). 그리고 정체불명 동네 들개 몇 마리와, 가까스로 존재만 확인할 수 있는 야생성 강한 동네 길가 고양이들이 한두 번씩 왔다 갔지만 원남이가 고개를 처박고 캔을 먹던 밥자리에는 겨울 집으로 마련해뒀던 까만색 길고양이 스티로폼 집만이 애처롭게 굴러다닐 뿐, 먹을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기에, 모두 실망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간 후 다시는 오지 않았다.
더위가 한풀 꺾인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정말 평범함의 극치-인, 어쩌면 원남, 영심이보다 특징할 수 없는 평범함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고양이가 남편의 눈에 띈다. 남편은 화가 났다. 기다리는 원남이는 안 오고 온갖 동네 똥개, 똥 고양이(?)만 들락거리니 원남이가 더욱 못 오는 게 아닌가 싶었단다.
이를 알 리가 없는 녀석은 남편의 차가운 눈길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본인의 임무에 충실했는데, 사무실 옆에 묶어놓은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금목걸이를 주렁주렁하고 와도 반겨줄까 말 까인데, 쓰레기봉투를 다 헤집어놓은 녀석이 못내 마땅찮다.
"도둑고양이 새끼라니까 진짜 하는 짓이"
"도둑고양이라는 말 쓰지 마!"
나는 도둑고양이라는 단어가 케케묵고 오만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들이 대체 무엇을, 누구로부터 도둑질했단 말인가? 그들의 생존권을 강탈한 건 오히려 사람이 아닌가.
사람의 손을 떠나간 쓰레기까지도 소유권을 주장하며 그들에게 도둑이란 낙인을 찍는다면 꽤나 억울할 것 같았다. '응응, 내가 고양이 라면 말이지. 무척 짜증 나고 서러울 거야. 하늘 아래 같은 동물로 태어났거늘, 나에겐 아무것도 허락된 것이 없구나 싶을 테니까'
하지만 미화 차원에서 보자면 찢어진 쓰레기봉투들이 그다지 썩 좋은 모습은 아닌 것도 인정. 그래서 남편은 억울하게 외친다.
"아니 매번 쓰레기봉투를 저렇게 뜯어놓는데, 내가 이뻐할 수가 있겠냐고. 내 눈엔 도둑고양이 새끼지 저게"
"쟤도 배고프니까 그럴 거 아냐. 그러면 밥을 주던가, 원남이 먹이던 캔도 많이 남았잖아"
"싫어. 이건 원남이 꺼야"
쓸데없고 완고한 고집, 융통성 없는 남편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본인의 첫 길고양이 친구인 원남을 못내 못 잊는 모습이 안타까워 말을 삼키는데, 남편이 씩씩대며 말을 잇는다
"그럼 앞으로 저 새끼 이름은 쓰봉이야."
쓰봉이는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지 어쩐지도 전혀 관심도 없는 눈치다. 그저 이틀, 삼일에 한 번꼴로 와서 먹을 거 하나 없는 쓰레기봉투를 박박 찢어 난도질해놓고 남편의 고함소리에 쏜살같이 도망가 버리는 것만이 그 고양이의 숭고한 임무였다. 사명(社名)을 수여받은 원남이와 영심이와 극명한 차별 대우가 느껴지는 네이밍이다. 쓰레기봉투의 "쓰봉"이라니,
쪼금은 불쌍한 맘이 들면서도, 나 역시 원남 영심과 헤어진 아쉬운 마음이 가시질 않아 쉽사리 쓰봉이에게 정이 붙질 않았다. 저러다 언젠가 두남이처럼, 다른 방문객들처럼 사라지겠지 싶어 쓰봉이든 쓰레기든 맘대로 불러라 하고 관심을 끊었고 그 후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쓰봉이는 도둑고양이가 맞았다.
왜냐고?
기어코 남편의 마음을 훔쳤기 때문이다. 쌍팔년도에나 굴러먹던 촌스러운 표현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사실이 그런 걸? 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쓰봉이의 스토리를 풀어볼까 한다.
이것이 과연 쓰봉이의 큰 그림인지, 어쩌다 얻어걸린 타이밍인지 그것은 치즈 고양이의 신 말고는 모를 일.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길고양이 라이프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나비효과인 것도 그때는 몰랐었다.
등장인물
쓰봉이. 그리고 사료 한 톨도 줄 수 없다며 완고한 태도를 고집하던 남편.
상황
점심에 닭볶음탕을 먹고, 설거지하기 전 국물과 건더기 조금을 개수대 근처에 부었다고 한다.
으레 있는 일. 보통 음식 쓰레기는 잘 모아서 집으로 가져오지만 국물이 있거나, 그 양이 적으면 땅으로 돌려준다고(?) 한다. 뭐 그날도 아무런 생각 없이 흙바닥에 닭볶음탕 국물 한 국자 정도를 뿌리고 뒤로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쓰봉이가 그 국물을 '애처롭게' 핥아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 장면이 남편에게는 커다란 충격과 압도적인 불쌍함으로 다가왔고 두 계절 동안 남편의 마음을 굳게 잠가버린 빗장을 스르륵 풀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엔딩
"쓰봉이 밥을 줬는데, 얘는 사료도 잘 먹네. 밥을 좀 사놔야겠다"
이쯤이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겠지, 그렇다. 쓰봉이는 단연코 도둑고양이였다.
남편의 통찰력에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