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첫 길고양이인 원남이는 영심이를 데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
겨우내 어디서 무얼 했는지, 다시 돌아온 원남이는 발바닥도 노랗고 귀도 노랗고 코도 노랬다.
노릿노릿한 털은 치즈 고양이의 찬란한 상징이지만 노란 발바닥의 상징이래봤자 황달 따위의 질병뿐이다.
우리는 잠시 고민했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하는 것보다 많은 밥을 먹이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
코스트코에서 길냥이 사료 한 포대를 사와 낑낑대며 부어줬건만 뻔뻔한 고양이 놈. 까득거리는 건사료따위는 먹지 않는다 단식투쟁을 한다. 결국 보다 못한 남편이 원남이 밥시간마다 업무를 중단하고 일일이. 번거롭게. 사료에다 캔 두 개를 촉촉히 비벼 조공했고 그제서야 이 노란 놈은 만족스럽다는 듯 밥을 먹어줬다.
뻣뻣한 우리 남편. 결혼하고 7년 동안 집고양이 병원비 수발은 열심히 했으나, 밥 한번 제때 퍼준 적은 없다지.애들 밥은 늘 내 담당이었기에 그 사실에 딱히 큰 불만은 없었지만, 저 꼬락서니를 보니 역시 사람은 임자를 만나야 바뀌는 것 같다.
남편의 지극정성 비빔밥 조공으로 어느덧 원남의 콧잔등에 불그스레한 혈색이 돌았다.
따듯해진 봄 햇살. 포동 해진 원남이. 평화로운 남편.
그런 어느 날, 우리 회사에는 또다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건강을 찾은 원남이 꽁무니에 어떤 놈이 사은품처럼 쭐레쭐레 붙어 다닌다는 것이다. 점점 잦아지는 제보로만 어렴풋이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그 녀석은 곧 남편 눈에도 포착되었다. 땅땅한 원남과는 달리 체구가 야리야리하고 딱 봐도 어린 티가 나는 치즈 고양이 동네 촌놈같이 생긴 원남과는 달리 아몬드 형 눈에 보석 같은 눈동자가 매력적인 아이로 원남이보다 더 겁이 많고 소극적인 성격인지 늘 원남 뒤에 숨어있다가 원남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그제야 살그머니 나와 한입 먹고 눈치 보고, 그러다 발소리라도 나면 후다닥 도망가서 한참 뒤에나 식사를 이어가던, 전형적인 야생 고양이 서타일의 암컷 고양이였다.그래서 더욱 교감이 없던 녀석이었으나, 원남과 함께 다니는 그 모습이 꽤 이뻐 보여 회사의 수다거리가 종종 돼주었다
맑고 청아한 '애웅-애웅'하고 우는소리가 들릴 때면 아 얘는 울음소리가 원남이보다 이쁘네 정도의 정보밖에 없던 아이에게도 이름이 생겼는데 그 이름은 바로 영심.
회사 내 직원분이 따로 운영 중이신 회사명을 개조해 작명해 준 것이다.
홀연 듯 등장한 고양이들은, 이토록 우리의 정신을 쏙쏙 빼먹고 있었다. 물론 캔 속의 알맹이도 말이다.
원남과 영심이 환상의 짝꿍이 되어 우리회사의 일원이 된 지 조금 된 어느날. 남편이 동영상을 하나 보내줬다.
영상이 찍힌 건 일주일 전.
'요즘 원남이가 안 와. 이날 내가 안 말려서 그런 것 같아'
걱정스런 말투로 시무룩하게 이실직고하는 남편. 영상엔 짧둥한 꼬리의 원남이와, 카라멜에 가까운 진한 치즈 색의 고양이가 한바탕 혈투를 벌이고 있다.연한 치즈와 진한 치즈가 엉겨 붙어, 엎치락뒤치락 하더니 이내 원남이가 귀를 잔뜩 내리깐 채 뒷걸음질 친다. 길고양이의 생태계에 큰 관심도 없고, 또 큰 영향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남편이 영상을 기록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짧은 사투는 끝이 났고, 아무래도 패자는 원남이인듯싶었다.
상대방 고양이는 딱 봐도 큰 체구에 근육질의 몸매. 투실한 볼따구를 지닌 대장 고양이의 면모가 물씬 풍기는 녀석이었고 그에 비해 원남이는 소박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당해 내기 힘든 상대였지 않을까 싶다. 영심이의 등장에 대장 고양이가 출몰한 걸까. 1년여 동안 평화로웠던 회사가 고양이들의 세력 다툼의 현장이 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결투 이후로 남편의 첫 길고양이인 원남이는 영심이를 데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
원남이가 늘 앉아있던 자리는 진한 캐러멜색의 대장 고양이가 차지했고, 남편은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 녀석을 째려보고는 쉭쉭 소리를 내며 쫓아냈다. 모두 그 녀석의 차지가 될게 뻔한 사료 그릇도 매섭게 치워버렸다.
대장 고양이는 몇 번이고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다시 방문했으나, 승자의 전리품이 남편의 차가운 푸대접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곧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우리 회사에는 어떤 고양이도 머물지 않은, 쓸쓸한 봄. 그리고 여름을 맞이했고, 우리의 운명을 바꿔놓은 골때리는 뉴페이스의 등장은 그로부터 조금 더 지난 후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