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을 지키는 더 약하고 안타까운 존재들
"두남이 잡아왔어요."
하얀색 아우디를 몰고 모래바람을 가르며 등장한 그녀는 트렁크도 아닌 뒷자리에 소중히 실린(?) 노란 통덫을 무심하게 들어 기세에 눌려 쫄아든 우리 부부 앞에 턱 놓아주었고 그 모습은 흡사 백마 탄 왕자, 아니 여왕님 같았다.항상 먹던 밥그릇 근처에 캣닢을 뿌려주니 기분이 좋아서 뒹굴대던걸 고대로 유인하여 한방에 잡아왔다, 두남이는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니 절대 실수로라도 통덫을 열어 놓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그녀에겐 기세가 있었고 나는 생각지도 기대치도 않았던 포스에 마음이 웅장해졌다.
'개 멋지다.......'
나의 롤모델이 생긴 날이었다.
이쯤에서 잠시.
결혼 전, 소액이지만 후원과 봉사를 하던 쉼터가 있었다. 캣맘이자 쉼터장은 언제나 아프고 힘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사연이 기구만장한 고양이들을 구조해 나왔는데 나는 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디자인 재능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고 쉼터장의 밥도 사주고 당시 회사에서 퇴근하던 구남친(현남편)을 쉼터에 데려가 문풍지를 두르고 못까지 박게 했다.
그러나 쉼터장은 나의 시간들을 불쌍한 동물들을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노동력으로 치부하고 봉사자들끼리의 단합을 막기 위해 이간질을 반복했으며 후원을 위해 고양이들의 히스토리를 불쌍하게 조작을 하기도 했고 일련의 입양사기 논란으로 쉼터가 시끄러워지자 나를 방패 삼아 주동자격인 입양자들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하여 뭣도 모르는 나는 존명! 을 외치며 게거품을 물고 신나게 달려 나가다 같은 봉사자언니가 '니가 알고 있는 게 진실이 아닐 수 있다'며 제지해 주어 개망신직전 가까스로 멈추는 일도 있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 잠결에 전화 한 통을 받게 되고... 무려 결혼식 전날 새벽 쉼터장의 무한 하소연+뒷담을 듣다 진저리가 나서 탈주한 후 봉사 쪽은 거들떠도 안 보게 되었다는.. 슬픈 흑역사를 소개해본다.훌쩍
약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을 지키는 더 약하고 안타까운 존재들.
그들에게 착취당한 경험으로 생긴 편견. 그래서 나는 고양이 밥은 주지만 같은 카테고리에 묶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쓰둥이들을 챙기는 행위가 '캣맘, 캣대디'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의 등장은 불쌍한 동물들을 도와주는 행위에 대해 어떤 마음과 책임으로 임해야 하는지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와도 같았는데, 대화 속에서 추론한 내용을 조금의 살을 얹어 말해보자면 cctv와 적외선카메라까지 설치한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는 단단한 밥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오고 있었고 아픈 아이들은 바로 병원에 데려가 (자비로) 치료해 주었으며 구청과 연계하여 주도적으로 TNR을 시행하고 부당한 행정에 적극대응하는 -하이테크놀로지와 재력을 결합한 캣맘- 이였다. 리스펙&어썸 그 자체. 그런 그녀와 헤어진 후 나는 남편에게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나도 벤츠탈래"
아침엔 세 마리 낮에는 열네 마리가 되는 것은?
고양이요.
두남이 포획과정에서 글이 길어져 분량이 많아졌지만 사실 쓰둥존에 가장 먼저 입성한 것은 두남이가 아니다. 날름 잡아서 호로록 넣어 옮길 수 있는 최강순둥이 양남이와 아빠만 있으면 어디든 간다는 귀동이, 그리고....꼬맹이다.
꼬맹이를 가장 먼저 이동시켜야 했다.
왜냐하면, 귀동이 출산소식으로 인해 멘붕을 겪고 수술을 마친 양자를 제외한 나머지 암컷고양이들을 싸그리 잡아 중성화하기로 맘먹은 그 해 겨울. 날씨가 너무 춥고 애들이 너무 어리다며 중성화를 2개월 뒤로 미루자는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아직 오지 않은 봄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에 두남이의 얼굴에 상처가 생기는 날이 잦아졌다. 또한 마당에 못 보던 고양이가 자주 출몰한다는 말에 아직 찬바람이 가시지않았지만 기어코 세 마리를 들춰매고 병원에 데려간 날. 꼬맹이와 요미가 임신을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과 마주하게 된다.
이게.... 말이 되나. 세상이 날 억까하네.... 히히 혹시 몰카인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대기실에서 중얼대는 나에게 '간혹.. 이렇게.. 어린데 임신하기도 해요... 근데 너무 작은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 선생님의 눈빛도 꽤나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 꼬맹이의 뱃속엔 여섯 마리. 요미의 뱃속엔 다섯 마리가 있단다.
그렇게 우린 세마리로 가서 열네마리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