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데리고 살기로 했다.

야생고양이로 살면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문명을 받아보거라.

by 쪼북


야생고양이들



쌩야생고양이들을 데리고 50km의 거리를 가는 건 결코 만만치 않았다.

1차로 출발한 양남+귀동+꼬맹이는 가장 만만한 조합인 거 같아서 첫 주자가 되었는데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귀동이때문에 공황장애 올뻔했다. 설마 가는 내내 울겠어? 싶었지만 본투비 징징돌이 귀동이는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신명 나게 울어댔다. 비행기에서 내내 울던 아이들의 엄마아빠 심정이 이런 거였을까....

2차는 두남이었고, 의전행차하듯 모셔야 했다. 통덫은 굳게 잠겨있었지만 혹시라도 뭔가 잘못되어 열리기라도 하는 날엔 대재앙이 열릴 거란 생각에 우리의 모든 행동엔 경건함 마저 묻어있었다. 두남이는 가는 내내 없는 듯 고요했다. 원래 강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대신 도착하자마자 철조망을 원숭이처럼 올라타서 굉장히 무서운 소리로 울어댔다. 그 소리에 동네 고양이들이 모여들었고 한동안 그 구역 왕초고양이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3차로는 나머지 고양이들이었다. 양양이 와 뚜기, 그리고 양자. 이 셋은 붙잡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어 가장 마지막으로 구성되었다. 그중 귀동이의 엄마인 양자 역시 내내 소리를 질러댔으나 귀동이보다 템포가 있다는 점이 달랐다. 미친 듯이 울다가 뚝 그치고 조용해지는 구간이 있다는 말인데 , 그 시간엔 밑에 깔린 배변패드를 신경질적으로 작살내는데 몰두했다. 몇 번의 울고+찢고의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트렁크를 열자 ,찢겨진 배변패드가 눈처럼 휘날렸다. 겨울이었다.

마지막은 양평이. 유독 손을 안타는 아이인데 심지어 포획실패까지 해버렸다. 허술한 케이지로 인한 양자의 대로변 탈출사건 이후 남편은 크게 충격을 먹고 , 세상의 계획은 혼자 다 세운다는 J답게 과감하게 통덫을 아예 구매해 버렸다. 원목으로 만들어져 미관상 (?) 아름답고 리모콘으로 조절하는 20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통덫. 그러나 남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이걸로 모든 고양이를 잡을 수 있다면야.... 그러나 두남이를 제외한 다른 고양이들은 그냥 순순히 케이지로 들어가 주었고 그나마 효과를 발휘할만할 양평이 정도만 잡아봄직 했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 리모콘 작동이상으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양평이가 도주. 그렇게 실패했다.


야생 고양이의 포획실패는 다음번 난이도가 200%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상가상 다른 아이들이 모두 이동, 두목인 두남이까지 사라진 상태에서 혼자 남은 양평이가 다른 고양이들로 인해 영역밖으로 쫓겨날 확률도 낮지 않았기에 염치없지만 백마 탄 캣맘께 도움을 청했고 그날 오후 무사히 포획에 성공하여 얼레벌레 포획과 이동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쯤 남편은 매입한 부지에 사무실을 짓는 과정에서 잦은 잡음으로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찾지 않던 술을 부쩍 찾았다.


"아 그러니까 왜 오늘 공사가 안되냐고요!!!!!!!!@)#)%"

목에 핏대 세우며 싸움박질하고 헉헉대다가도

"오늘 중고가구점 가서 애들 올라갈 선반 좀 사자. 다이소에서 숨숨집도 좀 사고"

"간식 쇼핑도 해놓자!"

상실된 인류애를 그토록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를 사는 것 마냥 두근대는 마음으로 새로운 보금자리에 넣을 것들을 쓸어 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자!

야생고양이로 살면서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문명을 받아보거라.

폭신폭신한 방석이라던지, 아기자기한 밥그릇이라던지 말이다.

3472477710113832508.jpg 공장에서의 마지막 날


P20220429_135815704_DFD28E91-E33E-401D-B9B2-47DD1F70CD5D.JPG 처음 온 곳이 무서운 귀동이와 양남이
3472477702819450428.jpg 이사 첫날. 짜장면이라도 시켜줘야할듯





길고양이가 그렇게 좋으면 몽땅 데리고 살아라!!!



길고양이가 그렇게 좋으면 몽땅 데리고 살아라라는 캣맘이라면 한 번쯤 들어봄직했을 말이 있다.

보통은 네거티브한 뜻으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 난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길 원하며 슬쩍

"저 근데 고양이 밥 주는데..." "우리 남편이 밥을 줘요 많이 많이~" 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나는 조금 아쉬웠다.

아, 정말 잘 받아 쳐 줄 수 있는데..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당당하게 외쳐본다.


"그래 우리 다 데리고 산다!!!!!!!!!!!!!!!ㅠㅠ"



근데 고백하자면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쓰둥이들에겐 비밀로 해주시라)

막대기로 쿡쿡 찔러보는 것이 애정표현의 전부였던 남편. 그 남편의 마음을 천천히 녹인 원남이. 그리고 그 원남 이를 쫓아낸 두남이. 그 자리에 들어온 쓰봉이. 그리고 쓰봉이의 새끼들을 지켜낸 두남이. 마침내 두남이를 거두게 된 우리.

모든 것이 치즈 고양이 신이 의도한 '*냥카식레코드'가 아닐까. 그렇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얌전히 순응하자. (*아카식 레코드: 개인의 생애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와 사건, 그리고 모든 경험과 지혜가 집약된 우주적 데이터베이스)


허나 아무리 신의 계획이라도 우리가 착취한 것이 그들의 자유라는 사실을 합리화시킬 수 없었다.

고양이들은 굶지 않겠지만 풀숲으로 뛰어다니는 벌레를 쫓지 못할 것이고, 지붕이 있는 집 아래 누울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달빛아래 야행은 하지 못할 것이다. 차가운 빗물에 몸이 젖을 일도 없겠지만 ,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그루밍을 할 이유도 없을 것이며, 꽁꽁 언 얼음바닥을 피해 겅중거리지 않아도 되지만 눈밭 위에 쫑쫑쫑 찍힌 귀여운 발도장은 더 이상은 못 볼 것이다.

죄책감과 책임감은 쓰둥이들이 잃은 자유만큼 우리에게 얹어졌다. 우리에겐 그들을 데리고 갈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나 결국은 인간만의 사정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게도.

너희들의 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비용을 지불하고 올 또 다른 사람에게 시간과 돈을 들여 너희를 돌보아라, 말할 수가 없었다.라고, 사실은 모든 것이 너희들의 것이 아님을 아느냐고, 너희의 하늘도 땅도 바람도 꽃도 나비도 흙도 너희 것이 아니었다고, 누군가가 허락을 해줘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 말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나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너희들의 원망도 , 너희들의 죽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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