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귀동이가 죽었다.

by 쪼북


이별이라 함은 만남이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늘 짝꿍처럼 함께 손을 붙잡고 다니다 때가 되면 손바닥에 배어 든 땀을 탁탁 쳐내며 슬픔의 길로 홀로 떠난다. 추운 겨울이 지나는 길목 우리는 새로운 만남과 조우했으며 그들의 손을 꼭 잡고 온 어수룩한 이별도 받아들여야 했다.




고양이왕국의 감기가 돌다.



매서운 겨울의 중심, 이사를 앞두고 고양이들에게 허피스가 돌았다.*허피스:고양이 호흡기 질병

밥그릇의 밥이 줄지 않고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있던 녀석들의 출석률이 저조해지자 현 우두머리고양이의 포지션을 담당한 남편의 심경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날은 풀릴 기미가 없었고 가끔 콧물 눈물이 들러붙어 꼬질한 몰골의 양남, 양자만이 사료를 모래알처럼 깨작이다 사라지곤 했는데, 이 두 놈의 상태로 아이들에게 허피스가 유행 중이구나를 추측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근처 동물병원에다 길고양이 감기약을 처방받아 가루약을 간식에다 타놓는 것뿐. 뭐라도 먹겠단 의지만큼은 꿋꿋했던 양자, 양남이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두남브라더즈(두남+뚜기+양평으로 이루어진 수컷고양이클랜)은 먹자마자 약임을 알아챘고 '니들이 감히..'라는 눈으로 우릴 쏘아보곤 자취를 감추었는데, 몰골을 보니 다행히도 두남이의 빠른 격리(?) 덕에 허피스를 앓지 않은 듯 보였다. 다만 임신묘 꼬맹이가 다 죽어가는 얼굴로 밥그릇 앞에서 부들부들 떨다 가는 것을 목격했고 몇 번을 잡아보려 했으나 실패. 하지만 잡는다고 해도 대안이 없었으므로 급하게 쿠팡으로 식물용 미니 비닐하우스를 구매한 후 공구로 구매한 길고양이 집을 안에 넣어두었다. 살벌한 하악질과 사정거리 내 오면 무엇이든 작살내겠다는 기세는 여전했기에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신개념의 하대를 받으면서도 '음, 지랄하는 거 보니 살 수 있겠군'하며 우두머리고양이 사모님으로써의 지식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나름 고양이 집사로 역사가 길거든? 이 콩알만 한 녀석아. 그렇게 기다란 집게로 간식그릇을 집어 꼬맹이의 코앞까지 밀어주어주는 것으로 오후일과를 마치면 나는 다시 집으로 가서 일을 했다. 요미는 임신확인을 하자마자 그 길로 시댁으로 보내졌다. 꼬맹이는 손은 안타지만 그럭저럭 쓰둥이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 출산확인을 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 요미는 완전 쌩야생중의 야생이므로 어디 모르는 곳에 새끼를 낳아놓고 숨어버리면 , 중장비가 많은 우리 공장 특성상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 하나를 차지한 채 누구도 이 방에 들여보내지 않겠노라 구석에 짱 박혀서 매서운 시선을 쏘아대는 요미에게도 콧물은 줄줄 흘렀지만 칼바람이 쌩쌩부는 공장마당보다는 훨씬 나으므로 이대로 출산까지 한 후 데려오기로 했다. 고요하고 조용한 계절이었지만 누구보다 분주했던 우리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시작될 무렵 다행히도 고양이들은 감기를 이겨내고 다시 노랗게 바글거리기 시작했다.



귀하게 키운 귀동이



그러나 딱 한 마리. 귀하고 귀하게 키운 우리 귀동이는 감기를 쉽게 이겨내지 못했다.

동물에게 칭얼댄다거나 징징댄다거나 하는 표현을 붙여도 될까 싶지만 하루 종일 쉰 목소리로 '이이잉' 징징거리며 어른고양이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딱 두 살배기 사람아기 같았다. 귀동이는 유독 껌딱지였고 양자는 유독 날라리엄마였기 때문에 그녀는 새끼의 이가 나기 시작할 무렵 얄짤없이 독립을 시켰다. 그러자 귀동이는 수고양이의 젖꼭지의 존재가치는 이 시대의 귀동이를 위한 것일까 싶을 정도로 아빠(로 추정)되는 양남이의 젖에 집착했고 착한 양남이는 귀동이를 받아줬다. 본인의 꼬리를 쭙쭙 빨아대면서 말이다. 귀동이가 젖을 빨고 양남이는 꼬리를 빨고 앉아있는 모습은 가히 진풍경이었다. 말리면서도 귀여워서 연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 귀동이가 모든 고양이가 복귀했음에도 잘 보이지 않자 나의 하루일과에는 1. 꼬맹이 밥먹이기 2.귀동이찾기가 포함되었고 마침내 나는 귀동이의 산실이 있던 낡은 자재창고 안에서 핼쑥해진 귀동이를 찾아냈다. 나를 보고 도망가려 했으나 힘이 없는지 귀만 연신 뒤로 눕히며 경고의 눈빛을 쏘아대던 녀석을 살피는데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살도 많이 빠졌고 낯빛도 그닥이다. 캔을 가져다줘도 시큰둥했고 츄르도 거부하는 모습에 나는 주저 없이 녀석을 케이지에 넣어 병원으로 향했다. 거세게 저항하는 귀동이에게 얻은 상처가 꽤 아팠다.

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은 후 콧물이 떨어지지 않는 양남이와 귀동이를 남편의 사무실로 들였다. 이 상태의 귀동이를 또다시 방생할 수없었으며 더 꼭꼭 숨어버릴 녀석을 찾느라 시간낭비를 할 수 없으므로 전무후무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후부턴 내 담당이었다. 이 치즈고양이 왕국을 만든 건 남편이지만 관리하는 건 역시 안사람이랄까. 훗. 나는 스스로 내 역할에 도취되어 귀동이의 주둥이를 억척스레 벌려 약을 먹이고 강급을 했다.


따듯한 사무실에서 며칠 집중케어를 받자 귀동이의 컨디션이 눈에 띄게 회복했고 3주 후 우리는 예정했던 이사를 시작했다.




어쩔 수가 없다



이사 후 쓰둥이들은 생각보다 느긋하게 잘 적응을 했다. 가끔 두남이가 우렁찬 포효를 해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지만. 이사한 지 일주일 꼬맹이가 출산을 했고 그것을 우리는 적응의 신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유독 시들 거리는 녀석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귀동이고 하나는 양평이었다. 양평이는 좁은 공간에서 만나니 생각보다 더욱 겁이 많고 경계심이 심했다. 그러나 두남이와 뚜기, 양양 이가 있어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듯했으나 귀동이는 좋아진 듯하다가도 다시 쳐지기를 반복했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회사의 이사를 계획하며 아이들의 거취여부도 결정할 때 무조건 '선이 필요하다'라고 상정한 부분이 바로 의료처치에 대한 부분이었다. 자유로히 마당을 뛰어놀던 시절의 그들에 대한 귀책은 길고양이의 신에게 50%, 야생에게 50%가 있었다면 현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게 우리 인생 계획에 있었던 일도 아니고! 마리당 100만 원 잡는다고 해도 900만 원이야. 이거 무시 못해. 마리당 맥시멈을 정해둬야 해."

"두고 가면 다 죽는 엔딩인 게 뻔해서 데리고 온건 맞지. 그래도 우리에게 도의적으로 책임이 있는 건 무시할 수 없어. 밥을 주기 시작한 건 우리니까."

"약 먹이고 간단한 처치로 충분히 나을 수 있는 질환이나 외상 접종은 해주는 게 맞는데, 그 외에 돈을 쏟아부어야 가까스로 연명하는 질환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진단을 위한 검사비용이나 건강검진 같은 건 해줄 수 없어."

"그래.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없지. 우리가 동물단체도 아니고.."

"근데...... 그거 알어? 우리가 고민해 봤자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는 걸.."


이사 전 회사는 도심 속에 위치하여 있어 병원에 데려가는 게 어렵지 않았으나 이곳은 완전 시골이다.

'읍면리'로 단위가 나뉘는 지역이고 시내라고 불릴만한 곳에는 ‘가축병원’이 있었다. 여기에 조건을 붙이면 상황은 더 열악해진다.

1. 고양이를 진료하는 병원. 2. 길고양이를 진료하는 병원. 3. 손을 타지 않는 흉포한 길고양이를 진료하는 병원.

그나마 그게 가능한 수준의 동물 병원으로 나가려고 하면 기본 20-30분은 달려야 하는 이곳이 쓰둥이의 새로운 보금자리이다. 외상. 경증 이외에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딱 거기까지만 치료해 주자로 규칙을 정했고,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깨져버린 규칙




그러나 규칙이 무색하게도 우린 성남 고급주택단지에 위치한 고양이 전문병원에 귀동이를 입원시켜야 했다.

그곳이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깝고 치료가능성이 높은 세 번째 병원이었다. 첫 번째는 이사 가기 전 들른 병원이었고, 두 번째는 귀동이의 코와 귀가 노래지는 느낌이 들어 시내에 있는 조그마한 병원에 데려갔지만 '별문제 없는 것 같다.'며 우리를 돌려보냈다. 남편과 나는 이대로 귀동이를 내버려 둔다면 죽을 것 같단 생각에 의견이 일치했다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 을 외치며 간 병원이 이곳인 것이다.

새로운 병원에서는 귀동이의 병명을 ‘복막염’이라 진단 내렸다. 지방간도 심하고 탈수도 심하여 비루관을 장착해서 영양분을 공급하고 하루에 한 번씩 혈액검사도 해야 한다고 했다.

진단을 위한 검사와 연명을 위한 치료 모두가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너무 늦게 데려온 것은 아니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우린 정말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었고 귀동이는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었음이 사실이니까. 입원 이틀차 병원비가 100만 원을 가볍게 육박했다. 하루에 입원료만 20만 원이고 검사비용까지 합치면 하루에 40-50씩 추가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이쯤 되니 규칙이고 나발이고 그냥 이판사판이었다. 남편은 귀동이를 절대 잃을 수 없다며 현 사태와 막고라를 뜨겠다 선언했다.

‘돈이 얼마가 나가도 귀동이를 살린다'


하지만 신약이 없어 복막염치료가 불가+ 경련증상으로 인해 귀동이는 신약치료가 가능한 네 번째 병원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곳에서 귀둥이는 빈혈을 추가로 진단받고 수혈을 준비했는데 '생명연장을 위한 처치'중에서는 수혈도 포함이었다. 나는 내 고양이를 다른 고양이 피로 살린다.라는건 선택지에 넣어놓지않았다.. 그러나 온통 하얗고 노래진 귀동이를 보며 그 결심도 접어둬야 했다.

귀동이는 치료과정도 꼭 처음 만났을때처럼 사람 마음을 들었다놨다 했는데 절망과 희망을 장난꾸러기 고양이마냥 아슬아슬 외줄 타기를 했다.

절망-심각한 빈혈

희망-그러나 수혈받으면 호전가능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나는 귀동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자꾸 했던 것 같다.

'수혈받고 컨디션이 돌아오면 복막염 신약 치료를 할 수 있어. 그럼 식욕이 돌아와서 지방간도 좋아질 테고.'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귀동이까지 합쳐져 고통받던 남편도 화장실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테고.




B형 고양이


"아. 보호자님 오늘 귀동이 활력이 좀 돌아왔네요. 근데 혈액검사결과가... B형이네요."

오전 일찍 수의사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제가 B형남자는 많이 들어봤는데요. B형 고양이는 뭐죠? 이 징징대는 성격은 혈액형과 성격 간의 관계론적 분류체계에 의거한 건가요? 우리귀동이가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고양이라서 요미를 꼬셔 온건가요? 혹시 크면 성격이 다혈질이 된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겨서 연락을 주신 건가요?

이런 농담을 해서 현 상황이 나아진다면 얼마든지 헛소리를 개소리와 버무려서 할 의향이 있었지만, 그럴리는 없겠지.

“비형고양이는 수혈이 거의 불가해서 보호자분들끼리 따로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혈액을 공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혈이 정말 쉽지 않아요.”

조심스러운 말로 예후를 알리는 수의사의 말을 듣는데 번뜩이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 그렇다면 문제없어요. 우리가 부모묘를 데리고 있거든요. 둘 중 하나는 비형일 테고요! 그렇죠? “

“공식으로는 그렇죠. 확실하다면야..”

절망- 귀동이는 전체고양이의 10프로 비중을 차지하는 희귀 혈액형의 고양이고 현재 빈혈이다.

희망- 우린 부모고양이를 데리고 있다.


"오빠! 당장 양남이 데리고 병원으로 가!"

이 순간, 이 순간을 담당하는 지휘자도 내가 되었다. 양남이라면 공혈묘로 완벽하다.

커다랗고 튼튼하고 느긋한 고양이니까.

귀동이가 있는 병원은 공장으로부터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니 가까운 병원에서 혈액검사부터 하라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만사 제쳐두고 양남이를 데리고 30분 거리의 병원로 달려갔고 그 사이 나에게 전화가 왔다.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귀동이가 힘들어하더니 방금 사망했습니다. “

나는 귀동이가 절망과 희망사이를 외줄 타기하며 지 성격처럼 뺀질거리며 피해 다니던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들의 규칙을 모두 깨부수고 귀동이를 치료하려고 노력했던 것이고.


“여보, 양남이 A형이래”


하지만 뒤이어 걸려온 남편의 전화에서 나는 귀동이가 피해 다닌 것이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는 걸 깨달았으며

그제야 아 , 나는 귀동이가 왜 딱 한 마리였는지 알았다. B형 고양이였던 귀동이 말고는 *모두 죽은 것이다.

(어미가 비형일 경우 A형인 새끼들은 빈혈로 사망할 가능성 높다고 함)

양자가 B형이였구나. 하지만 난 양자를 공혈묘로 선택할 수 없었다. 양자는 작고 예민했다. 아마 데려가서 바늘을 꼽는 와중에 쇼크를 일으키던가 차 안에서 기절하던가. 하여튼 양자로는 예민한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린 그녀에게 빚이 있다. 귀동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놓쳐 죽을뻔한 적도 있었기에, 다시 한번 새끼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 요구할 수 없었으니

이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양남이를 선택한 것은 부디 양남이가 귀동이를 살려줄 수 있길, 감히 고양이 신에게 배팅을 청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양남이의 혈액검사로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완벽히 졌고 애초부터 확률은 0에 수렴했다. 타이밍상 양자를 데려갔어도 귀동이는 기다리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정말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날 위로할 수 있었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양남이 옆에 아닌 차가운 병원 입원실에서 귀동이를 홀로 떠나게 했다는 것만큼은 사무치는 후회로 남는다.

길고양이를 치료하기 위해 규칙을 모두 깨트렸다는 것에 얼마나 오만하게 도취되어 있었던가.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아서는 길, 나는 이제 귀동이를 살릴 수 있다며 자신만만했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입원장 속의 귀동이는 벽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그냥 안아 들고 데려올걸, 자기가 사랑하는 고양이들 사이에서 떠나게 할걸. 나는 내 후회와 함께 봄에 꿈같이 다가온 아기고양이 귀동이. 첫 길고양이를 그리 보냈다.


3472455000015937580.jpg 잼민이시절 귀동
3472477721807620156.jpg 이사온 후 아픈 귀동
3472477922751413308.jpg 통통하게 살이 오른 건강할때의 귀동
3472477923215911229.jpg 아빠껌딱지인 귀동
3472477923537796156.jpg 엄마와 함께인 귀동
3472477923561668924.jpg 요미와 함께인 귀동
3472477923660252220.jpg 엄마 젖을 찾는 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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