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에는 두 번 다시 아깽이와는 인연이 없을법한 집사들이 모두 몰려왔다
귀동이가 떠날 무렵 우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가족으로 맞이했다. 시기적으로 요미가 1개월 정도 먼저, 뒤이어 꼬맹이가 출산을 했다.
요미 네 마리, 꼬맹이 여섯 마리. 총 11마리의 아기고양이가 우리에게 왔다. 요미는 시어머니댁의 방 한켠을 산실로 잡아 출산을 하였는데 자꾸 새끼들을 아주 깊숙한 곳으로 끌고 들어가 돌보는 바람에 새끼들이 혼자 나올 만큼 커서야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미의 새끼는 고등어 무늬와 삼색무늬를 반반 섞어 태어난 녀석 둘, 턱시도 하나, 잉크가 모자랐는지 콕콕 점박이를 찍은 삼색젖소 한 마리였다. 요미는 강한 야생성만큼이나 강한 모성을 지닌 고양이였고 그래서 새끼고양이들은 방구경이라도 뽈뽈뽈 할라치면 여지없이 어미에게 끌려들어 가야 했다. 딱히 위협하는 요소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요미는 방 곳곳으로 새끼들을 옮겨 숨겼고 그 과정에서 턱시도고양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어미의 절절한 모성에도 불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꼬맹이는 요미와는 조금 달랐다. 아주 깊고 어두운 곳에서 출산을 하고 아무도 안 보이는 껌껌한 저녁에만 밥을 먹으러 나왔기에 긴가민가 했던 요미와는 달리 컨테이너 내부 산실에 적합한 숨숨집을 거부하고 마당에 대놓고 오픈된 스크래처 하우스 안에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봄이 흩어지고 여름의 문턱이었으나 아직 쌀쌀한 저녁바람이 걱정되어 실내로 옮겨주면 새끼들을 하나씩 물고 나와 마당에다 보란 듯이 꺼내놓았다가 중간중간 수유할 때에는 여섯 마리를 이고 지고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저 쪼그맣고 비틀거리는 몸이 하루 종일 부지런을 떨어대지만 효율성은 없어 보이는 게 영락없이 초보엄마의 모습이다. 시간마다 수유묘용 캔을 따듯한 물에 개어 젖을 먹이고 있는 숨숨집에 넣어주면 화가 잔뜩 난 표정의 꼬맹이가 하악질과 발길질로 환대해 준다. 타고난 식욕으로 으르렁대면서도 한 그릇은 뚝딱 해치운다. 다 먹고 나면 고마움의 표시로(?) 그릇을 뻥 차서 밖으로 내던지는 그녀의 배은망덕한 행태에 익숙하게 어이가 없다. 하지만 새끼고양이 여섯 마리 직관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내 존엄성보다 더 가치 있지 않겠는가? 더럽고 치사해도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끼들이 눈을 모두 뜨고 조금씩 꼬물댈 무렵이 되자 꼬맹이는 대놓고 그들을 마당에 방생하기 시작했다. 아마 무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불안했던 것 같다. 꼬맹이의 새끼는 바보 형제 뚜기와 양남이가 훌륭한 삼촌고양이로써 공동육아를 도왔다. 양평이는 새끼들이 다가오면 깜짝 놀라 도망가기 바빴지만 거부하진 않았고 양자 양양이는 시큰둥했지만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무리의 우두머리인 두남이가 약간 걱정이었으나 역시 새끼고양이에게는 한없이 스위트한 그. 다행히도 꼬맹이의 새끼는 무리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출산 소식을 들은 주변의 고양이 집사들은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들은 새끼고양이를 보기 위해 장장 40킬로가 넘는 길을 운전해서 오기도 했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운 집사들은 시작은 새끼고양이로 창대할 수 있겠으나 운 좋은 몇을 빼곤 새끼고양이와 인연이 없다. 키우던 고양이가 수명을 다해 사망하거나 혹은 중도 입양을 할 때도 기회가 많은 자묘들보단 , 상대적으로 입양기회가 적은 성묘를 선택하게 되기 때문이다.(쉼터/보호소 입양기준이다). 이것이 집사의 숙명이다. 별을 따라 마구간으로 향한 동방박사들처럼 황금과 유황대신 츄르와 장난감, 스크래쳐와 갖가지 간식을 들고 이 생에는 두 번 다시 새끼고양이와는 인연이 없을법한 집사들이 모두 공장에 몰려 새끼고양이들을 경배하고 탐미했다. 아기고양이 관람료를 받아서 사료비에 보태야 하나 싶은 원대한 야망이 스멀스멀 샘솟을 무렵 머리가 복잡해져 미뤄뒀던 숙제들이 다가왔다.
“이렇게 많은 새끼고양이를 어떻게 입양 보내지?”
행사 많은 5월. 그중에는 비애묘인들은(?) 모르는 ‘아꺵이대란’이라는 이벤트가 있다. 5-6월쯤 되면 기하급수로 늘어나는 길고양이들의 출산으로 정말 많은 수의 아기고양이들이 입양전선에 뛰어든다. 수요는 정해져 있지만 공급은 무한정인 상황에서 우리가 이 치열한 입양전선경쟁으로 11마리의 새끼고양이들을 다 보낼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가슴한켠이 갑갑해져 왔다. 한동안 나는 지인과의 인사가 ‘안녕 고양이 키울래?’가 되었는데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보낼 수 없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입양처에 보내느니 다 데리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컨테이너는 이미 9마리의 고양이로 포화상태였기에 최대한 입양처를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우리 부부의 전생과 이생 후생의 인맥까지 다 끌어모아도 될까 말까 한 비관적 상황에서도 아기고양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여섯 마리의 치즈고양이들은 한 뭉탱이로 뭉쳐져 있으면 정말 누가 누군지 분간이 어려웠는데 치즈감별사인 남편마저도 조금 힘들어 보일 정도였다. 커가며 이목구비가 정돈되고 나서야 이름을 붙여줄 만큼 특징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후 1개월이 조금 넘은 시점 꼬맹이는 본격적으로 육아독립을 선언하였다. 그것은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놀 것이니 젖을 먹고 싶으면 알아서 때를 맞추라는 신호였고 눈치껏 젖을 챙겨 먹는 녀석들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아이들은 성장이 쳐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추운 바람에 감기가 걸리면서 눈이 팅팅 부은 녀석 둘, 콧물 질질 흘리는 녀석 셋이 어미에게 돌봄 받지 못하고 마당에 깔아 둔 카펫 아래에서 덜덜 떨고 있는 걸 본 남편은 나에게 더 이상 꼬맹이에게 육아를 맡기면 안 될 것 같으니 집으로 데려가서 돌보라는 거룩한 지령을 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