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만큼은 나의 좁고 지저분한 옷방을 천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방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내 물건들을 대충 치우고 밀어낸 자리에 아기고양이들이 방문했다.
고양이들끼리의 원만한 합사를 위한 방묘문은 우리 집에 늘 상비되어 있었으나 활용도가 무색하게 아기고양이들은 손쉽게 철창사이를 오갈 수 있을 만큼 어렸다.
어찌나 작은지 다이소에서 산 2천 원짜리 바구니를 화장실로 쓸 정도였다. 각각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기웃대다가 이내 형제들과 신나게 뛰어놀기 바쁘다. 뛰어놀다 배고프면 먹고, 쉴 새 없이 싸고 잘 때는 한 곳에 모여 부둥켜안고 잔다. 호흡기질환으로 콧물은 여전히 흘렸지만 따숩고 포근한 집에서 원 없이 먹고 자고 한 아이들은 금방 회복했다. 방묘문을 쓸 수없는터라 기존아이들과 격리를 위해 문을 닫아놨는데 굳게 닫힌 작은방 너머엔 완벽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꼬릿꼬릿한 키튼사료의 냄새와 나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작고 노란 생명체 다섯 마리. 그 순간만큼은 나의 좁고 지저분한 옷방을 천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집에 새끼고양이 있다."라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갔다. 멀디 먼 시골 공장에서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도시의 아파트로 이사 왔단 소식은 너무 멀어서 차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지인들에게는 희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도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해서 아기고양이들을 보러 온 집사들을 전편에 소개했다. 그만큼 노묘집사들에겐 아기고양이의 존재가 희귀 포켓몬처럼 반가운 존재이다.)
첫 타자로는 야근으로 점철된, 직장생활에 찌들 대로 찌든 20년 지기 친구가 귀한 주말시간을 할애하여 방문했다. "옛다. 먹어라"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내 손에 디저트를 들려주곤 작은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또 그때 당시 인터넷으로 오버워치라는 게임에 한참 심취해 있었는데 , 그곳에서 인연이 된 어린 동생들을 종종 집으로 초대하는 게 내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다. 오죽하면 내 집을 그 지역의 '핑'이라고 칭했을까. 특히나 갓 20대에 진입한 아가씨들에게 '아기고양이 보러 올래?'는 거절할 수 없는 완벽한 매혹이었을 것이다. 한껏 앳된 얼굴의 청년들이 집으로 우르르 모여든다. "야! 너무 많으니까 나눠서 들어가자"며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 남성팀/여성팀으로 나누어 시간을 분배한다. 그 사이 난 집주인에게 바쳐진 다양한 조공을 모으는 재미를 쏠쏠히 느끼곤 했다.
딩동-
문을 열으니 옆집 아주머니의 대학생 딸이 수줍게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서있는 날도 있었다.
"혹시.. 고양이 보러 들어가도 되나요?"
절대 네버 고양이는 키울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강경한 입장에 고양이를 좋아하는 모녀는 나름 투쟁을 시도한듯하였으나 실패한 듯 보였다.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들어선 그녀에게 조용히 어묵꼬치 하나를 넘겨주고 문을 닫아주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행복으로 완충된듯한 표정을 지으며 총총총 귀가하는 그녀의 어깨는 더 이상 쳐져있지 않았다.
체다
아기고양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관심을 가졌던 친구. 내 친구의 친구의 일을 도와주다 알게 된 사이로 업무를 하다 인사 몇 번 한 게 다인 서먹한 사이였다. 그러나 '고양이 좀 보러 갈게'하더니 속전속결로 우리 동네로 와 김치우동을 먹고 본인이 점찍어놨다며 콧물자국으로 초못생김을 자랑하던, 그러나 가장 애교가 많아 인기가 많았던 셋째 고양이를 입양하겠다고 했다. 입양 전선에 뛰어들기도 전에 이름이 생겨버린 녀석을 친구는 단박에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피타
이렇듯 사람들을 초대하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고양이들을 보고 좋은 입양처가 되어주거나, 소문내어 소개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다행히도 공장에다 두고 키우는 것보다 집에 데리고 와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올리기 시작하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중 두남이와 똑 닮고 발가락에 야무지게 양말을 신고 나온 '꼬꼬'는 집으로 오기도 전에 입양을 갔다. 한참 식물을 키우는데 심취해 있었을 때 알게 된 분으로 실제로 만난 적도 없이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전부였는데, 무심결에 올린 입양고민 이야기에 키우는 고양이의 동생을 만들어주고 싶으시다며 먼 길을 달려오셨다. 첫째 고양이는 당뇨로 리브레를 항상 부착하는 친구였는데 스트레스로 인해 합사를 오랫동안 고민하시다 둘째로 맞이하셨고 둘은 무사히 합사가 되었다.
태양
태어날 때부터 눈이 너무 단춧구멍만 해서 가장 먼저 이름이 지어졌던 '단추' 못생긴 외모(?)에 통통 튀는 성격으로 나름 두터운 팬층을 지닌 녀석은 지인의 지인을 통해 입양을 갔는데 그 역시도 둘째로 보내졌다.
비건음식을 전문으로 만드시는 분이라 오며 가며 맛있는 걸 많이 얻어먹은 기억이 난다.
아직도 작은 문을 열면 단추가 제일 먼저 통통 튀어오는 모습이 그려진다. 작은 눈이 들러붙어 더 작아 진채말이다.
제이미&제레미
가장 기골이 장대했던 꼬양(첫째)과 꼬미(둘째)로 추정되는 튼튼 브라더스는 지인의 지인의 둘째/셋째로 입양을 갔다.
이 둘은 만약 입양을 못 보낸다면 데리고 살까? 든든한 아들이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를 느끼게 해 준 녀석들이었다. 10+@년 암컷고양이 집사로만 살다 보면 수고양이들이 갖고 있는 여유로움+느긋함이 생소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마련이다. 또한 다른 동생들이 맹구처럼 콧물 질질 흘리고 있을 때 타고난 피지컬로 눈곱하나 끼지 않은 강함도 그러하다. 간혹 집에서 들려오는 큰 소음(청소기 등등)에 동생들 앞을 막아서고 주저 없이 하악질도 하고 침도 뱉는 모습까지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꼬뇽
모두 입양이 예약되었는데 마지막 한 녀석이 남았다. 그렇다. 이 녀석들을 집으로 모두 데려와 보살피게 만든 장본인. 막내고양이다. 이 녀석은 자기 어미인 꼬맹이 판박이였다. 깜찍한 외모와 지랄 같은 성격 모두 말이다.
다른 형제들은 치즈냥이의 대표적 성향이라는 '순둥'+'애교' 기능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었는데 얘는 만지는 것도 잡는 것도 허락하지 않아서 유독 부어있던 한쪽눈의 안약을 넣을 때마다 한참을 씨름해야 했고 형제들에게 밀려 밥그릇이 멀어지면 그대로 밥을 포기해 버렸다. 그때마다 나는 쪼그마한 이빨과 손톱에 긁혀가며 아이입에 이유식을 밀어넣어야 했고 분노에 찬 얼굴로 나를 째려보며 '웅냠냠'거리며 한끼의 식사를 마치는것이 서로의 일과였다.
(뭔가...기시감이 든다...기분탓이겠지..)
"얘.. 이렇게 사나운데 입양 갈 수 있을까?"
"일단 우리사무실에 데려다 놔. 이제 내가 돌볼게"
남편의 권유로 돌봄의 장소를 공장사무실로 이전하기로 했다. 당시의 나는 외부업무가 잦았고 새끼고양이들만 두고 외출하는게 점점 부담스러워졌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바톤터치였다.
"요미가 하도 울어대서 이젠 중성화를 시켜야 될 거 같다."
"허억.어머니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저희가 요미랑 새끼들 얼른 데려갈게요"
"그래. 근데 보내려니 마음이 섭섭하긴 하네"
한 톨의 털도 허락지 않던 야생의 요미였지만 따습고 훌륭한 산후도우미 (=어머니) 덕분에 요미의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났다. 1개월에 새끼를 독립했던 꼬맹이와 달리 요미는 2개월이 넘어서야 새끼들을 조금씩 밖에 풀어주기 시작했고 때문에 우리가 만날 수 있던 시점은 2개월이 넘어선, 아깽이와 청소년묘 그 어디쯤에 있는 녀석들이었다.(사고뭉치의 최절정. 똥꼬 발랄 그 자체의 연령대라는 소리다)
5마리의 고양이를 입양 보낸 쾌거에 도취될 여유도 없이 그렇게 우린 다시 남은 녀석들의 입양을 준비해야 했고 남편의 사무실엔 꼬맹이의 새끼 한 마리. 요미의 새끼 네 마리 다섯 마리의 새끼가 방문하여 묘육원 2막의 장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