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시어머니
한바탕 폭풍이 소란스레 몰아친 뒤 엄마가 젖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럼 대체 네가 원하는 엄마의 모습이 뭔데?"
그리고 내 입에선 예상치 못한 인물이 튀어나왔다.
"시어머니 같은 엄마."
대답을 들은 엄마는 조금 상처 입은 표정이었다. 아마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을 했을 테지.
엄마의 방어기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분명히 재력이 그 이유라고 꼽을 것이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보다도 어머니의 광적인 자기희생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럼 내가 너희 시어머니처럼 돈이 많아서, 이것저것 척척 도와줬으면 우리가 좀 괜찮았을까?"
그래서 엄마의 말도 아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희생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먹고살기 급급하면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로 생각을 해본다면 아예 무관한 해석은 아니긴 하지만.
듣는 내 입장에선 목구멍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엄마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엄마의 삶보다 내 삶이 더 우선이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시궁창에서 살아도 내 삶을 위해 희생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아프고 힘들어도 내 감정을 더 공감해 줬으면 좋겠고
엄마가 돈 한 푼 없이 길거리에 나앉게 생겨도 엄마 주머니에 있는 동전들을 싹싹 긁어 내 손바닥 위에 올려줬으면 좋겠어.
엄마의 삶이 벼랑 끝에 몰려도 결국 끝까지 선택하는 건 나였으면 좋겠어.
엄마의 삶이 모두 나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어. 엄마 머릿속엔 오로지 나만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밥은 먹었는지, 아프진 않은지, 힘들진 않은지, 내 발자국 하나하나 관심 갖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
날 위해 엄마를 삶을 송두리째 희생해 줬으면 좋겠어.
아우성을 치는 열망들. 당장에라도 꺼내어 엄마를 몰아세우고 싶지만 나 역시 상처 입은 표정으로 엄마를 쳐다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린 서로 영원히 만나지 못할 평행곡선을 그리고 있구나. 늘 비슷한 대화의 흐름의 반복을 하다 보면 절망감을 느낀다. 난 늘 엄마 자신 보다도 자식을 먼저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부모에게 자식을 위해 기꺼이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마음을 보지 못했기에 자식으로서도 충만하지 못하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되면 엄마는 나를 또 버리고 스스로를 택하겠지..'가 늘 마음속 깊은 곳에 뿌리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자식에게도 해당된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를 검열해야 했다. 같은 상황에서 나 역시도 자식을 가장 먼저 포기하게 돼버릴까 봐. 이럴 때마다 나는 엄마의 엄마에게 화가 나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 화가 난다. 희생과 사랑은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서 엄마가 나를 위해 본인을 내던질 수 없는 것은, 엄마의 엄마 역시도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맏딸에게 어린 자식들을 맡기고 춤을 추러 다니던 할머니. 똑똑하고 꿈 많았던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용기술을 배워 가족을 먹여 살렸고 결혼을 해서도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누구보다도 강한 자아를 갖고 있던 엄마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타인을 위해 산 것이다. 엄마의 가치는 오로지 돈이 증명해 주었기 때문에, 모성이니 희생이니 하는 가치들은 다 부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할머니. 왜 엄마를 이렇게 키웠어, 왜 이렇게 외롭게 키운 거야.
왜 당신들이 준 상처의 파편을 밟고 아파해야 하는 게 나인 거냐고.
뭐.. 엄마와 이런 대화를 했다. 하니 잠자코 듣고 있던 남편의 눈이 똥그래졌다.
"뭐? 우리 엄마..........? 그럼 너가 데려갈래...?"
남편이 표현에 따르자면
"우리 엄마는 지독한 통제광이야. 불치병임ㅇㅇ"
장성한 아들 둘이 한 명은 결혼 한 명은 출가를 하여 독립했음에도 불구 어머니는 늘 아들들의 안위를 전전긍긍 궁금해하셨다. 그런 부모를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 모습이 그다지 나쁘게만은 보이지 않았으나 남편은 어머니의 그런 점이 진저리가 난다 말했다.
엄마가 이럴 때마다 머리를 빡빡 깎고 절로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라던 에피소드 몇 가지를 나열해 보자면
1. 남편의 학창 시절, 정리광인 남편은 다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니 절대 멋대로 정리하지 마시라 신신당부하였으나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유학시절 사진이 담겨있는 카메라 sd카드가 들어있는 상자를 청소하다가 분실.(참고로 남편은 굉장히 깔끔하고 정리를 잘함)
2. 아들 사업에 불필요한 개입. 청탁시도를 하시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함.(남편 뒷목 잡고 실려갈 뻔함)
3. 일주일간의 신혼여행, 집에 약을 먹어야 하는 고양이가 있어, 어머니께 약만 부탁드림. 청소 모두 해놓고 가니 다른 건 절대 건드리시지 말고 고양이 밥이랑 약만 챙겨주시라 당부하고 옴. 그러나 약속된 시간 말고 다른 시간에 오셔서 그 시간에 방문 탁묘하러 온 나의 친구와 마주침. 집 대청소 + 빨래 돌려놓으시고 가버리심.
저녁 7시경 코사무이 해변을 보며 디너를 즐기고 있는데 친구에게 전화 옴
-야 너랑 니 남편 빤스가 세탁기에서 썩고 있어서 그거 널어놓고 왔다. 여름이라서 그냥 갈 수가 없었음.
(그날 코사무이 해변에는 남편의 고함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뭐 이런 레벨의 사건사고가 일 년에 여러 번 터졌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부지런하기도 하시지. 쫌 귀여우신 것 같기도..?'정도로 끝났지만 남편은 제발 제발 하지 마시라고 부탁까지 했음에도 불구 여지없이 묵살당하는 경험이 반복적으로 누적. 본인과 엄마를 '절망적이고 희망도 없는 관계'로 결론지었다.
결국 결혼 7년 차쯤 큰 내전이 일어났고 두 모자는 1년 동안 손절했다가 아이를 낳고 나의 중재로 극적 화해를 하기 이른다.(힘겹다..) 남편의 다정하고 침착하고 이성적인 모습 +바라던 가정환경에 이끌려 결혼했건만 막상 껍데기를 까보니 나보다 더 높은 불안도를 가지고 있었다. 난 특급불안러지만 다른 부분에선 좀 심각하다 싶을 만큼 무른 편인데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빡빡하게 조여져 어느 날 갑자기 쾅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금속조각 같았다. 그리고 불안은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에서 기인한다. 남편은 본인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대상(어머니)을 통제하고 싶어 했으나 어머니 역시 높은 통제욕구를 보유한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까. 자강두천의 싸움엔 희망도 답도 없었다.
애니웨이. 현시점으로 돌아와 이 이야기의 발단이 된 여행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엄마와 싸우게 된 이유도 그런 부분과 아예 무관하진 않다. 어머니는 여행 내내 지갑을 자주 여셨다. 그 이유는 '아들이 힘들게 번 돈 쓰는 게 안타까워서'라고 짐작한다. 왜냐면 어딜 가실 때마다 비싼 물가에 놀라셨고 안색이 자주 어두워지셨으며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라는 말을 필사적으로 참고 계신 것 같아 보였으니까. 반대로 엄마는 지갑을 열 때 본인이 얼마나 주목받을 수 있는지, 이 돈으로 본인의 가치를 얼마나 증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여행 내내 타이밍을 재고 있다 시어머니의 씀씀이에 자주 긁혔고 그게 우리 모녀의 피해의식을 증폭시켰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별반 상태가 다르지 않은 남편과 둘만 남겨질 때마다 이런 주제로 구시렁대다 역대급 반전을 도출해 냈다.
우리 엄마 - 돌발행동 적으나 수동적임. 비싸고 좋은 것 일수록 더 좋고 행복하고 강한 리액션. 이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해서 증명을 자꾸 남기라 나를 닦달함. 돈을 좀 안 씀. 니들이 이 정도는 쓸만하니 데려온 것 아니겠냐 나는 맘껏 즐기겠다 마인드.
내 평가= 자식이 돈 쓰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이 서운하고 뭔가 얄미움
남편 평가=돈으로 통제되니 오히려 편하고 변수 없고 행동예측이 돼서 덜 불안해. 장모님은 여행 데리고 다닐 만 해. 뭐든지 다 좋아하시니까.
시어머니-추진력 있고 행동파. 모든 걸 스스로 다 하려고 하심. 하지만 돌발행동 굉장히 많은 편이고 성격 급하고 룰을 안 따름(어디 가면 직원들이 자꾸 인상 씀) 돈 잘 쓰심. 하지만 그러나 앞으론 이렇게 비싼 곳 오지 말고 돈 아껴써라라고 덧붙이심
내 평가=그래도 우리 부담 덜어주셔서 감사하고.. 어머니 말은 그냥 걱정하시는 말로 들으면 되는데.
남편 평가=불만 많아서 데리고 다니기 싫은 타입. 저런 말 안 하면 안 되나?(긁힘) 내가 할만해서 하는 건데... 그리고 제발 말없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우리가 애타게 갈구하던 이상형의 엄마는 모순적이게도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들의 명료한 단점들은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꽤 매력적인 장점으로 다가왔다.
근데 말이다. 정말 네 엄마가 내 엄마가 되고, 내 엄마가 네 엄마가 된다면 우린 그것으로 만족할까?
분명 아니다. 우리가 엄마들에게 바라는 것은 지독스럽도록 고유하고 완벽한 모성일 테니까.
그러니 안타깝게도 평생을 갈급해할 거야. 하지만 우린 이제 자식이 아닌 부모가 되었어.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딸이(현재 두 살..) 자라나 성인이 되어 내가 되어 줄 수 없는 모습을 마구마구 요구하면 그땐 어쩌지? 나의 근간이 싫다며 부정하면 어떡하지? 딸이 원하는 모습의 엄마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개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힘들겠지.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은 살아남은 삶에서 얻은 딱지 같은 것이니까. 그러니 그것이 보기 싫어서 아무리 집요하게 잡아 뜯어내려고 해도. 피를 철철 내어 결국은 싸그리 잡아 뜯어낸다 해도 그 속에서 찾고 싶은 걸 찾을 순 없을 것이다. 내가 내 딸의 이상형의 엄마가 돼 줄 수 없는 것처럼, 엄마들이 우리의 이상형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는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엄마에게 내는 짜증이 30프로 정도 줄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내가 엄마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 글을 집필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거야.
아참. 그리고 앞으로 가족여행은 이렇게 가기로 했다.
-두 엄마와 동시에 여행 시 숨 쉬듯 돈을 써야 하는 리조트형 숙소는 절대 가지 말자.
-직접 장 봐서 밥 해 먹는 펜션형 숙소로 가자.
-모두가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