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은 엄마였다.
얼마 전, 아이를 데리고 엄마와 함께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은 여름휴가. 효도여행을 곁들인.
엄마의 편의를 위해 성심성의껏 배려 담긴 준비를 할 때와는 달리 여행지 내내 나는 거의 미친년 수준으로 짜증을 내고 다녔다. 말 못 하는 종횡무진 천방지축의 만 2세 딸보다 만 73세의 엄마를 통제하기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행동 하나하나가 변수로 작용했으며 그로 인해 나는 여행 내내 불안했고 그것이 짜증으로 터져 나오며 효과적으로 엄마의 기분을 조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괴감 넘치는 후회. 이것이 몇 년째 반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모질고 강퍅한 딸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밉냐고 묻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사실 답은 나와있었다. 서로 모른 척하는 것뿐이다.
프롤로그에도 적어놓았다시피 나는 엄마와 초등학교 4학년 때 헤어졌는데, 10살의 인생에서 내가 삶을 기억하는 시작점이 5살이라고 치면, 엄마와 살부대끼고 산건 고작 5년 정도의 시간이다. 그 삶 외에는 간헐적으로, 드문드문,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 정도로 삶을 공유한 흔적이 적었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에 데이터베이스가, 시간의 흐름대로 누적이 된 것이 아니라서 나는 자꾸 엄마에게서 다른 사람을 찾았는데 예를 들면 엄마가 가장 젊고 빛났던, 스스로의 삶을 기꺼이 가꾸고 살던 날 버렸을 시점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때가 내가 가장 사랑한 엄마의 모습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엄마가 나의 엄마가 된 것이 서른여섯이고 , 내가 기억하는 나이는 마흔 초반정도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늘 나이보다 10년 정도는 어려 보이는 무적동안이었고 세련된 취향과 우아한 에티튜드, 고고한 에고를 지녔으며 어느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디 그것뿐이랴 문학과 영화, 음악을 폭넓게 아우르는 감성(조용필에서부터 핼로윈까지) 몸에서는 항상 살바도르 달리의 달리심므의 은은한 향기가 풍겼다. 엄마는 미용일로 생업을 일궜는데, 그래서인지 늘 풀세팅한 머리와 풀 메이크업은 당연했다.(벗겨진 적 없는 네일까지도) 이토록 아름다운 엄마는 딸이 보기엔 완벽한 이상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버려진 이후 소원이 '엄마와 함께 사는 것'이 되었다. 늘 갈망했다. 소망했다. 나의 첫사랑은 엄마였다.
서른여섯. 꿈이 이루어졌다. 드디어 엄마와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출산 때문이었다. 엄마는 가출한 직후를 빼고는 자주 연락을 하며 내 주변을 인공위성처럼 빙빙 돌았다. 나 역시도 연을 끊을 만큼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살며 그냥 멀리 사는 친정으로 자연스레 포지션이 잡혔고 그렇게 엄마는 73세의 나이로 어엿한 할머니가 되어서야 내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동거는 함께 육아를 도모하겠다는 거룩한 대-원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았다.
아주. 매우. 많이. honestly.
일단 내가 아줌마가 됐고 엄마가 할머니가 된 부분이 큰데, 그것보다도 내가 엄마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치가 생각보다 굉장히 높고 아득하다는 점이 문제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없이 자란 딸에겐 엄마라는 존재는 굉장히 특별하고 범접할 수 없는 고가치를 지닌 존재였기 때문에 부가적으로 붙는 옵션이 기괴하게 많았다.
엄마는 엄마로서 태어나야 했고 존재해야 했고 희생해야 했다. 모순적이게도 엄마도 부모로서의 삶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로서의 자신보다도, 혼자 생존해야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리고 한 명의 여자로 사는 것이 더 익숙했기에 우리는 지독하게 부딪혔다. 나는 엄마를 자꾸 후벼 파내어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것 같은 '진짜 엄마'를 찾아내려 했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많이 다치고 그런 엄마를 보며 나 또한 상처받는 바야흐로 대환장 잔치가 벌어졌다.
나는 엄마에게 파격적인 자기희생을 강요하면서도( 내 아이를 좀 더 성심성의껏 봐달라!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꺄아악~!! 아기 안을 땐 손톱 깎고 화장 지우라고! )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희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버렸다.
임신 때부터 유독 심한 입덧으로 생긴 우울증이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고, 자꾸 아이를 맡기고 밖으로만 나돌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나 역시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올 때 가장 먼저 포기할 존재가 아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덜컥 생기기도 했다.
나에게 히스토리가 없었다면!! 그냥 단순히 답답한 일상을 탈출하려는 귀여운 엄마의 마음.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이렇게까지 고차원적인 성찰로 이어지는 것이 짜증 나서 괜히 엄마한테 화를 내기도 하고,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황혼육아의 포상과 휴가도 엄마에겐 마치 엄청난 특혜인 것처럼 갑질을 부리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데 나에게는 그런 것이 1도 샘솟지 않았다. 엄마에게 원망만 무럭무럭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