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딸, 버리고싶은 아들

프롤로그

by 쪼북

"엄마 난 괜찮으니까 할머니집으로 가도 돼."


직장에서 늦게 들어왔단 이유로 새벽 내내 아빠와 다투던 엄마의 눈가에 흘러내린 까만 마스카라 자국을 보며 '도망가라'며 덤덤히 제안했던 내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10살이었다.


당시 기억은 흐려짐 없이 생생하다.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 불쌍함, 아빠에 대한 미움.

엄마는 아빠와 말다툼을 할 때마다 늘 나를 무릎 위에 앉혀놓았는데 항상 소리 지르는 건 아빠였고 눈물 흘리는 건 엄마였으니 어린 내 눈에는 강자와 약자가 실로 명확했다.


권위적이고 신경질적인 아빠와 달리 엄마는 늘 생기 넘쳤고 재밌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대부분의 딸이 그러했는지 몰라도 나 역시 아빠보단 엄마가 좋았다. 그래서 엄마의 감정을 늘 예민하게 맞닥뜨렸고 엄마는 곧 나. 그녀의 감정에 완벽히 동화되어버렸고 엄마가 "엄마는 이제 아빠랑 살 수 없어. "라고 말했을 때 내 허락여부와는 상관없이 집을 나갈 그녀의 계획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수있었다. 그러니 "가지 마"대신 "가도 돼"는 허락이 아니라 순응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10살의 어린 나는 버려졌다. 이런 워딩을 쓸 때마다 내 곁으로 돌아와 있는 엄마는 펄쩍 뛰며

"그게 무슨! 너를 버린 게 아니라 잠시 헤어진 거지!"라고 반발했으나.

"엄마. 초등학교 때 생리대 사려고 슈퍼 들어갔는데 남자애들이 바글바글하더라. 부끄러워서 못 사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날 도둑으로 오해한 주인아저씨가 소리 지르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다가 무르팍이 다 까졌는데 아무에게도 말을 못 했어. 울면서 집에 돌아와서도 말할 상대가 없었어. 엄마, 난 그때 버려진 거야. 변명하지 마"


나는 엄마에게 버려졌어. 엄마가 1년 뒤에 돌아왔든 2년 뒤에 돌아왔든, 20년을 지나 30년 가까이 되어 내 딸을 돌봐주러 왔어도 말이야. 10살의 나를 두고 집을 나간 건 버린 거지. 바뀌는 건 없어.


나는 늘 그렇게 유기당한 아이를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

"버려진 아이" 아이는 교우관계에서도, 연애관계에서도 자주 비틀거렸다. 실수로 한 조그마한 잘못에도 내동댕이 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때로는 공격성으로, 때로는 이유 모를 철벽으로 혼자만의 전투를 해가며 살아왔다.



나를 버려. 아니 사실은 버리지 마 버려지고 싶지 않아

그런 내가 엄마를 버리고 싶다는 아들과 부부가 되었다.








평범한 집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남편이 엄마를 버려버리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첫 감정은 열등감이었다.

"복에 겨운 소리 하네. 어머니한테 잘해드려"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정적인 사랑을 적금처럼 보장받은 삶. 부러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남자를 찾아 결혼하리라 맘먹은 이후 찾게 된 그는 내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상처 하나 없이 사랑만 곱게 받고 산 것 같은 그의 삶에 편승하고 싶은 것도 그와 결혼한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것이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트리거도 되었다. 그렇게 복잡한 양가감정을 품고 그와 결혼해 10년 차.

그의 마음도 아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철부지 아들 같은 면모가 보일 때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등감 때문에 다툼도 잦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던 평범한 집의 안정적인 사랑이라는 것도 환상인 것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성질의 것이었다는 것. 정말 형형색색 다른 모습과 상처를 모두가 지녔고 그것이 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냐. 나 이제 엄마 안 보고 살래."


매사 불만 없고 말 잘 듣고 앞가림 잘하던 순둥이 아들이 갑작스레 변해버린 건 어머니로써도 청천벽력 같은 일일 것이다. 어머니는 정직하고 순박하고 착하신 분이었지만 자식에 대해서는 요즘 말로 하면 메타인지가 조금 부족하신 편이었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아들이 터트린 불만이 아주 오랫동안 곪아가던 고름 같은 것이라 생각지 못하신 어머니는 문제를 받아들이실 마음도 따라서 해결할 마음도 없으셨고 그렇게 아들에게 1년의 시간 동안 버림을 당한다.

그리고 난 그것에 동조한다.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그의 요구는 타당했고 그걸 들어주지 않는 시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렇듯 자식이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극히 편향적이고 이기적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원히 자식으로서 엄마를 대할 것 같던 우리가 부모가 되었고

그것이 집필의 시발점이 되었다.

나의 금쪽같은 엄마들 이야기.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금쪽이엄마가 되버린 내 이야기.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