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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떼뜨망 Mar 26. 2024

내 몸은 바늘, 세상의 축

고집쟁이는 교환학생(11): Bourse de Commerce , 김수자

V자로 대형을 맞춰 날아가는 철새들을 포착하면 눈을 떼기 힘들다.

너무 가까워지면 멀어졌다가, 너무 멀어진 것 같으면 가까워지며 미세하게 울렁인다. 땅에 박힌 내게는 부드러운 춤이지만 하늘을 가르는 새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간절한 운명이다.

결국에는 영속적으로 V자를 유지하며 순식간에 지나간다.


새내기 시절, 처음 신촌 캠퍼스에 도착해 학교 정문 앞에서 비슷하게 멍 때렸다. 

정문 앞에는 횡단보도와 4차선이 얽히고설킨 대각선의 크고 복잡한 교차로가 있다. 신호등이 붉은색일 때에는 끝에서 모두가 정지한다. 아주 잠깐의 합의된 평화. 그리고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지 마자 수면에 무언가를 떨어트린 것처럼 그 표면이, 회색 침묵이 깨진다. 안경 공대생도, 통통하고 인상이 좋으신 교수님도, 머리를 촌스러운 노란색으로 탈색한 새내기도 마치 약속한 듯이 무섭게 전진한다. 

학교로 향하는 무리와 학교에서 벗어나는 무리가 교차하는 짧은 5-10초 후 각자의 목적지로 흩어져 해산한다. 마치 횡단보도 앞에서 나눈 그 순간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직 선명하게 그 순간이 기억난다. 이미 학교에 합격하긴 했지만 아직 관찰자였다, 언젠가는 그 일체감을 나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너무나 간절하게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철새의 춤을 추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학교 앞 횡단보도 사진


서남쪽에는 루브르 박물관, 동쪽에는 퐁피두 센터, 그리고 바로 옆에는 Les Halles를 둔 Bourse de Commerce는 파리의 심장에 위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세기에 프랑스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집으로 지어진 이후, 18세기에는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 트레이딩의 장으로 사용됐고, 19세기에는 쿠폴라 천장을 덮으며 증권거래소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은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미슐랭 식당을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0층과 지하 2층은 한국 예술가 김수자의 작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수자는 대구에서 태어나 회화로 시작해 설치 미술과 행위 예술 위주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Bottari

첫 작품에서 김수자는 바닥에 놓인 커다란 천들을 하나씩 주워서 팔 위에 올린다. 스크린 앞에는 대여섯 개의 커다란 보따리들이 놓여 있다. 

보따리는 한국 정서의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보따리로 묶기 전, 그저 천이기만 할 때 천은 정착의 상징이다. 천은 신체와 가까운 매체다. 위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사랑하고, 쉬고, 죽는다. 하지만 천 끝을 보따리로 묶는다는 것은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보따리는 안식처에서 비롯된,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뜻한다.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바늘처럼 이용한다. 옛 신라가 위치했던 경주의 자연 속에서 천들을 줍는 행위로 천과 천을 바느질하고, 마지막에는 끝자락을 묶어 보따리를 만든다.


A Needle Woman -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


이 작품에서 김수자는 "내 몸은 바늘"이라는 테마를 더 과감하게 이용한다. 그녀는 도쿄, 상하이, 델리, 뉴욕 네 도시에서 완전한 익명의 뒷모습으로 일관한다. 미친 듯이 움직이는 배경에도 우아하게 정적을 유지한다.

하지만 세상과 동떨어져있지 않고, 공존한다는 인상을 준다. 세상의 축 역할을 자처한다.




이외에도 그녀의 작품들은 신체, 정체성, 움직임 같은 매개를 사용해 인간과 우주의 연결성에 대해 역설한다.

특히 대와 소, 움직임과 멈춤의 대비,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라는 도구로 세상의 일부로 존재하는 인간의 역할과 관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진다.


특히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바늘 여인"이라는 테마가 인상 깊었다. 커다란 세상 앞에 꼿꼿이 서있는 김수자의 연약한 뒷모습은 작고 무의미하다. 어찌 보면 세상에 놓여 있는 것처럼, 어쩔 때는 동떨어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림에서 여인이 사라지면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관찰자이자 관리자이자 참여자로서 세상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




Bourse de Commerce의 심장에는 일본 건축가 타다오 안도가 5년 전쯤 디자인한 커다란 원형의 거울 바닥이 있다. 계단 하나 없이 뻥 뚫린 중심부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19세기 건축가 앙리 블롱델이 디자인한 천장화가 보인다. 



바닥은 완전히 거울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안 그래도 층고가 높은 공간이 훨씬 더 넓어 보였다. 천장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반사돼 전시 공간을 또 다른 색으로 물들여서 입장했을 때와 색다른 인상을 줬다.


바닥에 비친 내 모습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거울 바닥에 반사된 관람객들을 봤다. 거울로 반사된 막힘 없이 이어진 신체가 마치 바늘 같았다. 모두 각자 우주의 축이겠지.




관계는 두려운 것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찾기 때문이다. 

오로지 관계만이 강제로 벌거벗은 나를 마주하게 한다. 세상이라는 거울 앞에서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 비로소 나를 알게 된다.

그런데도 그 일체감을 갈망한다.


세상과 맺는 관계는 원하거나 노력한다고 정립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처음부터) 내 몸은 바늘이 되어 시간과 기억을, 공간과 감정을, 몸과 침묵을, 시작과 끝을 연결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얼타던 새내기 시절에 비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지만 체념과 적응의 차이처럼, 김수자의 강인함에는 못 닿았다.


관람을 끝내고 Chatelet역으로 걸어가며 평소보다 유심히 파리지앵들을 관찰했다.

태도는 더 여유로울지라도, 그들도 V자로 날아가는 철새처럼, 학교 앞 횡단보도 위 사람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따르고 있었다. 


나도 지금 내가 꼭 있어야 하는 곳에서 존재하는 중이겠지.




그 외 흥미로웠던 작품들! 지금까지 간 미술관 중 Bourse de Commerce이 제일 좋았다..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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