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부부의 자작캠핑카 타고 유라시아횡단 신혼여행기 37탄
2024년 5월 12~13일, 불가리아 Rupite
릴라국립공원을 떠나 그리스 국경으로 향했다. 온천에 재미붙인 김에 김하나씨가 또 다른 온천을 찾아냈으니… 그것은 그야말로 노지 온천. 출입구도 매표소도 샤워실도 따로 없는, 들판 한가운데에 김이 솟아나는 그런 곳이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 캠핑이 가능하다기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Mineral baths Rupite
2863 Petrich, 불가리아
이 곳에 다다르면 공원인지 기념물인지 종교시설인지 모를 “baba vanga house”라는 장소가 나타난다. 아마도 방가라는 여성 예언자를 기리는 장소인 듯. 불가리아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장소인 듯 하다.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산책하기 좋은 장소로 입장도 무료라서 천천히 둘러보고 온천으로 갔다.
우리에게 크게 인상적인 곳은 아니지만 평화로웠던 시간이라 사진 몇 장 기록해둔다.
표정이 좋은 강아지
이 온천은 딱히 이름이 없다. 다만 남녀노소 불가리아 사람들이 즐겨 찾으며 온천을 즐기는 그야말로 모두의 공간. 넓은 들판 한가운데 있어서 캠핑카와 텐트들이 눈에 띄었다. 산과 들을 보며 온천하고 바로 캠핑카에서 씻고 맥주한잔 때리는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자리를 잡으려 어슬렁 거리는데 불가리아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여기 물은 진짜 최고야. 어디서든 캠핑해도 되고! 웰컴 투 불가리아!
그러더니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인 여행객들이 여길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맘편히 산 밑에 자리를 잡았다.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증기가 오후 햇볕에 반사되고 있었다.
노지 온천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웅덩이들이 이어져 냇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옆에는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샤워도 할 수 있고 탕과 정원이 있는 목욕탕이었다. 마침 시원하게 샤워를 해볼까했지만 웬걸… 불가리아돈을 다 써버리고 없었다. 바로 다음날 국경을 넘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구소련 느낌의 불가리아 온천탕
목욕탕 이용요금표
아무튼 온천을 기미하러 간다. 온천가에는 벤치와 작은 간이 탈의실이 있었다. 대부분 수영복을 입고 가운이나 큰 수건을 걸치고 왔다. 온천물이 용출되는 곳 주변은 70도나 된다는 경고 표시가 붙어있었다.
발가락을 살짝 넣어보니 과연 뜨거웠다. 얼른 빼고 조금 멀리 있는 탕으로 가보았다. 따뜻하니 적당하다. 온천은 내일 아침 해보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간단히 식사를 하고 주변을 산책 했다. 온천 주변도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매우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다.
최고의 차박지
저녁은 애호박전이었다. 이 애호박은 어디서 산 거더라? 한국 애호박만큼 보드랍고 고소했던건 기억난다.
캠핑카 세계여행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멋진 것이었다. 매순간 상상을 완전히 벗어난 경험으로 채워지는게 캠핑카 세계여행이었다.
아침일찍 잠에서 깼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를 가득 메우는 새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새소리가 내 바로 옆에도 앞에도 뒤에도 그리고 저멀리에도, 그래서 나는 새소리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해야겠지.
창밖을 내다보니 밤새 새롭게 흘러나온 온천수가 더욱 김을 내뿜고 있었다. 아직은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온천에 처음으로 풍덩 빠져보고 싶어서 서둘러 수영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적당한 온도의 온천탕을 찾았다. 열탕부터 온탕까지 다 있는 자연 노지 온천이다. 몸을 쑤욱 집어넣은 순간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온천탕의 바닥은 몽글몽글 미끄러운 연학 회색빛의 진흙으로 되어있었다. 물색은 옥색에 가까웠다. 여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매끈해지고 보드라운 진흙 감촉이 기분좋았다. 무엇보다 코끝을 스치는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온천의 대조는 최고였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며 어린이들이 진흙놀이를 하고 노인들이 열탕에서 몸을 담그고 지지는 모습들을 지켜봤다. 누군가는 물통을 들고와서 온천물을 잔뜩 떠가기도 했다.
지금 이 곳에는 리조트가 개발중이라고 한다. 실제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리조트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지금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온천>이 리조트가 들어서면 그들만 이용할 수 있는 온천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단지 하루를 묵어간 여행자였지만 이 지역 주민들이 언제까지나 이 멋진 온천을 넉넉하게 향유하기를 바라게 됐다.
충분히 즐기고 나왔다
누구나 머물고 접근할 수 있었던 온천
아참!
김하나씨가 온천에 머무는 동안 극적으로 후방카메라를 고쳤다! 끈기가 대단한 하나는 포기하지 않고 선이 끊어진 곳을 찾았고 카메라는 다시 켜졌다. 그리고 여행 내내 카메라는 한번도 탈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져온 납땜기가 유용했다.
후방카메라 수리완료!
불가리아 유산균과 간단한 아점
그리스!
우리는 온천을 뒤로 하고 그리스 국경을 향했다. 쨍한 그리스 하늘 아래 국경을 넘은 우리는 처음으로 EU가입국 사이에 출입국 심사를 하지 않고 통과하는 경험을 했다. 물론 불가리아가 쉥겐 가입국이 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육로 국경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고 국경에서 간단한 검문이 있었다.
국경에서 데살로니키까지는 약 140km. 그리스 톨비가 야금야금 내다보면 비싸기로 악명높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어서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140키로를 달리는 동안 세 번에 걸쳐 총 10유로의 톨비를 납부했다.
그리스는 특이하게 차의 높이를 기준으로 톨비 차이가 생기는데 우리 차는 2.7미터가 넘어서 1.9유로가 아닌 4.75유로를 내야했을 정도로 극적인 차이가 있다.
얼마간 달려 데살로니키에 당도했다. 사실상 처음 방문하는 유럽의 큰 도시여서 운전에 매우 긴장했다. 바닷가 공영주차장에 무사히 주차하고 데살로니키 시내에 첫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