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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Apr 08. 2023

스즈메의 문단속을 통해 본 웹소설/라노벨의 특징

잘했다는 말 아님

개인적으로 신카이 마코토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의 영화가 갖는 영상미에 관해서는 영화 티켓값을 전부 지불하고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게 전개를 못하는 문제인지 편집을 못하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답고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문제의 해결 과정 사이에서 비중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것이 <날씨의 아이>(2019)가 아니었나라고 생각한다.


<날씨의 아이>에서 히나 남매의 불행과 비에서 맑아지는 대조, 도쿄 뒷골목등의 배경미가 상당히 길게 이어지는데, 그에 반해 일반인인 호다카가 왜 그렇게 쉽게 신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 재앙이 왜 그렇게 쉽게 히나를 포기해 주었는지 등에 관한 설명은 상당히 약했기 때문이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이 문제는 유효하다. 다만 이 문제를 뭉뚱그릴 방법으로 여성서사를 선택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있다. 여성 주인공은 셀링 포인트로서도 유효하다. 게임 판매사이트인 스팀이나 웹소설 연재사이트인 조아라등에도 여성 주인공이라는 태그가 있다. 이는 페미니즘의 대두와는 별개로, 기존의 남성과 이성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디테일하고 다른 감성으로 접근가능하다는 대에서 일종의 장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근데 여기서 말하는 여성서사는 그런 여성성을 활용하기 위해 여성서사를 택한 것이 아니라 설명을 배제하기 위해 여성서사를 택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신비한 힘은 남성 주인공 소타에게 거의 몰려 있고 이야기는. 신토적 현상에서 철저하게 부외자인 여주인공 스즈메 위주로 돌아간다. 소타는 초반에 입이 없어지는 상황에 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이를통해 이 모든 사건이 어떤 논리에 대해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해 설명을 들을 수 없게 만드나, 주요 화자이면서 행동하는 인물이 스즈메이기에, 단독 주인공으로서 스즈메의 시점에서 그 설명들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덜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  이는 감독의 전작인 <너의 이름은>에서 미츠하와 타키의 구도와 문제와 비슷하면서도, 스즈메가 단독적으로 빠르게 움직임에 따라 설명에 대한 필요성 자체를 관객이 덜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노련해진 서사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여성 중심의 여성서사가 맞냐!고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부터 <인간 실격>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잘생겼지만 본인은 여자에게 무심하고 여자가 알아서 와서 들이대 주는 전형적인 남성향의 남자 주인공으로서 서사를 소타가 그대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뭐 여하간, 비슷하게, 전작들에 비해 잘 발전된 부분들이 <스즈메의 문단속>에 있고 전작들보다 더 이상해진 부분도 있는데 이게 참 요즘 웹소설이나 라이트노벨에 자주 보이는 플롯들이라 정리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 이렇게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경제적인 초반부의 사용이다. 첫 번째 문을 닫고 제목이 나오기까지 최초의 10여분 사이에 인물의 배경, 성격, 능력, 문제상황, 새로운 문제에 대한 밑밥까지 몹시 빠르게 전부 보여준다. 웹소설과 라이트노벨에서 1화에서 주인공을 설명하고 3화 이내에 주요 조연급 인물들이 전부 등장하고 5화 이내에 첫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 그 이상의 속도로 모든 일들이 전개된다. 최근에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초반부 몰입감만으로는 정말 좋았다고 기억된다.

 

이러한 경제적인 사용은 세 번째 문을 닫을 때까지 빠르게 이어지는데 그 형태가 게임 시나리오와 비슷한 면이 있다. 초반 약 60여분 동안 문을 닫는 장면이 3번 반복되는데, 그 사이사이에 치카, 루미 같은 해당 지역의 새로운 조연급 인물들이 나와 주인공에게 지역의 사정과 편의를 제공한다. 이세계물 라이트노벨이나 <검은 사막>, <로스트 아크>처럼 지역 위주로 전개되는 게임 스토리쪽을 생각하면 이 전개가 이해하기 쉬운데, 새로운 지역에 간다>>신규 인물을 만난다>>사소한 문제 해결을 돕는다>>호감도를 쌓는다>>편의를 제공받는다>>지역의 큰 문제를 해결한다>>그리고 지나온 지역의 인물들은 버려진다. 를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세 번째는 불명확한 선악구도이다. 소설의 시작이 마왕이 패배한 후 정체를 밝혔는데 사실 여성이었다던가, 그 후계가 어린 여자아이라서 주인공과 함께 살아간다는 식의 전개의 라이트노벨들이 재작년 정도부터 눈에 띄고 있었다.  다이진의 위치 역시 이와 비슷하다. 초반에는 악역처럼 나오지만 완벽하게 악역도 아니고 후반에는 주인공에게 헌신적이기 까지하다. 그런데 가장 암울한 것은 이와같은 과정에서 왜? 그래서, 인물의 스탠스가 뭐지? 에대한 설명이 빠져서 인물의 중심이 흔들린 것까지 정발 되다가 중간에 매출 부진으로 단종된 라이트노벨 같아졌다는 거지만.... 


이 다음부터는 까는 내용위주로 들어갈 것 같은데. 가장 라이트노벨과 닮았다고 생각된 지점이 얄팍한 감정선이다. <초인고교생들은 이세계에서도 여유롭게 살아가나봅니다>(2015)의 진입장벽 중 하나가 우익요소도 있지만, 초면의 엘프가 남주에게 반해서 키스부터 하고 시작하는 부분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비슷하게 <스즈메의 문단속>의 최대 개연성은 남주인공의 얼굴이다. 남주가 잘생겼고, 여주가 반했다. 만난지 며칠만에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사랑에 빠져있다. 디즈니조차 "오늘 만난 남자랑 결혼을 한다고?" 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내놓기에는 치명적이지만, 하렘물로 따졌을 때는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빠른 전개를 위한 생략역시 문제가 된다. 앞서 이게 스토리의 문제인지 편집의 문제인지라고 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빠른 전개와, 재난이 예측할 수 없기에 재난이라는 특수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했... 을거 같지 않긴 한데, 인물들의 감정선이 어떻게 되는가, 같은 부분은 설명에 거의 실패한 수준이고, 다이진의 의도는 무엇이었으며 사다이진은 제대로 대화도 한 적이 없는데 왜 나온 것인가 등이 맥거핀이 아니라 잘못된 사용으로 느껴질 정도로 설명되지 못했다.


다만 인물은 오히려 정통 소년만화식을 따랐다는 건 좀 재밌었는데, 스즈메의 경우 행동 양상이나 능력치가 00년대 중반까지의, 초반에는 좋아하는 사람과 연관되어서 약간 코 꿰이다시피 새로운 상황과 마주치는데 그 이후의 전개가 의리(?)/노력/트라우마/무한체력으로 이어지는 소년만화의 남성주인공과 패턴이 유사했고, 소타의 경우 비일상적인 일을 하면서도 교사를 꿈꾼다는 점, 번역에서는 전부 반말만 하는 걸로 나왔지만, 연상임에도 실제로는 스즈메 '씨'라고 반존대에 가깝게 부르고 있다는 점 등에서 스즈메보다 입체적인 인물이기는 하지만, 좀 지나치리만큼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데에서 <나루토>의 나루토 급의 꽃밭뇌가 아닌가라고 느껴졌기도 했다.



<별의 목소리>(2002)로 신카이 마코토를 처음 접한 입장에서, 이 양반은 원래 상업영화를 하려던 감독은 아니었다... 는 느낌이 있다. 상업작가와 순수예술가를 나누는 기준 자체가 모호하긴 하지만, 감독을 비롯해서 주요 연출과 스토리라인에 관여한 이들이 자기만의 감성이 잘 팔리는 것보다 몹시 중요한 종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그 영화를 보면서 받았다. <초속 5cm>나 <언어의 정원>까지 그 예술가 주의를 크게 놓지 못했고, <너의 이름은>에 들어서야 그 보다 훨씬 가볍고 잘 팔릴만한 것에 대한 것들에 대한 사용이 들어가기 시작하지 않았나라는게 내 생각이다.


여하간, 그렇게 생각했을 때, <스즈메의 문단속> 후반부에 늘어지는 템포는 보여주고 싶어할만한건 다 보여줬다. 그러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내놓겠다. 를 조금 무리하게 강행하다 생긴 문제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웹소설 판에서 종종 보이는 앞에서 어그로로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실컷 보여주고 어느 순간부터 자기 할 말이 커지는 작가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내가 느끼기에 그런 부분들이 가장 큰 지점이 고장난 오픈카를 타고 노래를 틀어놓고 달리는 장면부터였다고 생각한다. 겉만 번지르르 할 뿐 뚜껑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자동차에서, 최신 폰으로 옛날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아마도 일본의 현재 상황에 대한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래 3번 바뀔 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는 장면이기도 했는데, 여기서부터 템포가 훅 느려진 것, 세리자와 이모까지 함께 태워서 다닐 개연성이 부족함에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 사다이진의 쓸모가 없는데 굳이 등장한 것 등등을 생각하면 여기서부터는 이야기 자체보다도 가장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거기에 있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로 이어지는 미야기현(방사능 피해지역)의 장면들을 꽤 많이 보여주거나, 지옥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쓰나미 피해지역의 모습을 한 데다 다른 폐허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노출 된 문제도, 현재의 스즈메가 과거의 스즈메에게 하는 대사들이 다른 장면들에 비해 약간 붕 뜬다 싶을 정도로 시적인 것들이, 전부 그런 맥락에서 사용된 것들이 아닌가 싶어서, 사실 왜 저런 선택을 한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있으면서도, 저기서 부터 영화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2페이즈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장르와 템포가 완전히 달라져 버린 지점이어서 아쉽다고도 느꼈다.



총체적으로 앞 부분의 빠른 전개와 속도감을 위해 포기한 개연성과 뒷부분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긴데서 라이트노벨이나 웹소설 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다.


실컷 까고 할 말은 아닌데, 이전까지는 흐물흐물한 인물에 화려하고 실사적인 배경, 이 두가지가 완전히 프레임 별개로 붙여놓은 티가 날 정도로 따로 놀았던 것에 비해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이 크게 줄었고, 미미즈의 모습이나 터지는 연출은 아마 <모노노케히메>(1997)의 재앙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의 오무를 닮았다고 느꼈는데, 도쿄 상공에 나타난 미미즈의 모습은 이토준지의 <소용돌이>를, 고양이들의 미소는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를 연상케 해서 무엇을 오마주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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