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 5천만 원 의사가 압구정 아파트를 사기까지
친구들이 강남 임장을 다니며 학군과 용적률을 논할 때, 나는 당직실 구석에서 새벽 차트를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한도를 계산했고, 누군가는 대장 아파트의 이름을 주문처럼 외웠다. 하지만 나는 핸드폰 속, 초록색과 빨간색이 점멸하는 디지털 그래프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 끝이 천국일지 지옥일지 알지 못한 채.
2018년, 결혼을 했고, 당시 우리 부부는 5천만 원 정도의 현금이 가진 전부였다. 그때만 해도 인생이란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흘러가는 것이라 믿었다. 명문대 입학, 의사 면허, 결혼, 그리고 '내 집 마련'. 부동산은 언젠가 풀어야 할 숙제였고, 투자는 교과서에 없는 낯선 과목 같았다.
하지만 2019년, 주식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며 처음으로 깨달았다. 메스를 들어 버는 노동의 대가와, 오롯이 선택으로 벌어들이는 자본의 성질은 물과 기름처럼 다르다는 것을.
2022년, 시장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를 때 나는 코인 시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미쳤다고 했다. "그건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야." "지금 들어가면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거야."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세상 모두가 오른쪽을 가리킬 때 혼자 왼쪽을 바라보는 사람이 겪어야 할 필연적인 외로움을 각오했을 뿐이다.
비트코인은 집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등기부등본도, 든든한 현관문도 없었다. 물성이 없는 자산은 공허했고, 그래서 더 불안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자유로웠다.
누군가는 평수와 층수를 이야기할 때 나는 시간과 확률 게임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입지'라는 불변의 가치를 따질 때 나는 '변동성'이라는 파도를 타며 인내를 계산했다.
몇 번의 폭락이 내 계좌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날카로운 의심이 뇌리를 찔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선택이 실패할 것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정작 나를 괴롭힌 건 자산의 하락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감각, 그 서늘한 고립감이었다.
2025년, 나는 비트코인을 매도했다. 환호도 없었고, 터져 나오는 눈물도 없었다. 그저 아주 긴 문장의 끝에 담담히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투자 수익을 모아 압구정의 한 아파트를 샀다.
등기를 치던 날, 사람들은 결과만 보고 말했다. "역시 의사라 머리가 좋아서 잘했네." "운이 좋았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집의 진짜 가격은 등기부등본에 적힌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수년간 내가 감내해야 했던 의심과 고독,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버텨낸 침묵의 시간값이라는 것을.
친구들이 강남 아파트를 살 때 나는 비트코인을 샀다. 누군가는 지름길로 먼저 도착했고, 나는 지도에 없는 길을 돌아 이제야 도착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옳았느냐가 아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의 무게를 끝까지 견뎌냈느냐, 그 과정이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느냐일 것이다.
새 집의 창문을 열면 한강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지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아니다. 그 시절, 모두가 확신을 가질 때 혼자 불확실함을 선택했던 새벽의 나. 떨리는 손으로 매수 버튼을 누르던, 그 조용한 용기를 내려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