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대신 계산기를 든 의사의 투자 원칙.
의사는 숫자에 강한 직업이 아니다. 오히려 숫자보다 사람을 많이 보고, 확률보다 책임을 먼저 배운다. 그래서인지 주변을 보면, 힘들게 번 돈을 가장 허망하게 잃는 직업군 중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의사다.
나는 서울 노원구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개원한 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진료실에서는 매일같이
“원장님, 이거 확실한가요?”라는 질문을 듣는다. 그리고 투자 시장에서는 그 질문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보아왔다.
운이 좋게도, 나는 투자로 어느 정도의 여유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돈을 버는 방법보다, 돈을 잃지 않는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에는 이런 장면이 너무 많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몇 천만 원이 움직이고, 유튜버의 ‘확신에 찬 목소리' 하나에 수년간 번 돈이 흔들린다. 주식이라는 고위험 자산 위에 레버리지, 몰빵, 단기 매매라는 더 위험한 선택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문제는 정보가 아니라 기준의 부재다. 누구 말 듣고 샀는지는 알지만 왜 샀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올랐을 때는 실력이고 떨어지면 운이 된다. 이런 투자에는 통계도, 철학도, 복기도 없다. 나는 투자 전문가도 아니고 슈퍼개미도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원칙만은 꾸준히 지켜왔다. “이 투자로 밤잠을 설친다면, 그건 내 자산이 아니다.” 나는 잃지 않는 투자를 목표로 했다.
크게 벌지 않아도 좋았고,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았다. 대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단 한 번도 큰돈을 넣지 않았다.
비트코인으로 큰 수익을 얻었지만 지금은 코인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 서사가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투자는 신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정되는 판단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 나의 유동자산은 미국 주식 50%, 한국 주식 30%, 금 20%로 나뉘어 있다. QQQ, SPY, SOXX 등의 ETF가 대부분이고, 테슬라와 삼성바이오로직스, 그 외 몇몇 테마주가 있다. 개별 기업의 미래를 맞히기보다는 구조와 흐름에 베팅하는 쪽을 택했다.
의사는 진단을 할 때 하나의 검사 결과만 보지 않는다. 문진, 영상, 수치, 경과를 종합한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뉴스, 하나의 차트, 하나의 추천으로 결정해선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사는 자기 통제력을 과신하면 안 된다. 우리는 매일 생사를 다루기 때문에 결정에 익숙해져 있고, 그 익숙함이 투자에서는 오만으로 변하기 쉽다.
나는 앞으로 이곳에 내 투자일지를 올리려고 한다. 자랑이 아니라 기록을 위해서, 정답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흔들렸던 순간과 버텼던 이유를 남기기 위해서다. 의사가 속지 않고 투자하는 법은 특별한 정보에 있지 않다. 남의 말보다 자기 기준을 먼저 세우는 것, 수익보다 리스크를 먼저 계산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돈 앞에서도 의사답게 신중해지는 것이다.
투자는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다만, 인생의 선택을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 자유를 지키는 일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