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개별 종목보다 ETF를 믿는가

짜릿함보다 지루함을 선택한 이유.

by 닥터 플로우

주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이런 질문을 받는다.

“원장님, 요즘 뭐 사세요?”

이 질문의 행간에는 대개 이런 기대가 숨어 있다. '아직 많이 안 올랐는데 곧 터질 대박 종목 하나만 알려줘요.' '의사들만 아는 고급 바이오 정보 없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 머쓱해진다. 내 대답이 그들의 기대에 비해 너무 재미없기 때문이다.

“저 ETF 사는데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미슐랭 맛집 추천을 기대했는데 “그냥 집에서 백반 해 먹어요”라는 대답을 들은 표정이랄까.


개별 종목은 짜릿하고, ETF는 심심하다. 개별 종목 투자의 매력은 분명하다. 잘 맞으면 수익률이 화끈하다. 내가 남들이 모르는 가치를 발견했다는 성취감도 있다. 술자리에서 무용담을 풀기에도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단점 또한 너무 명확하다는 점이다. 분기 실적 발표 하나에 인생이 흔들리고, CEO의 말실수 한마디에 계좌가 출렁인다. 내가 아무리 공부해도 알 수 없는 ‘내부자 리스크’ 같은 변수가 항상 존재한다.

냉정하게 말해, 개별 종목 투자는 ‘기업 분석’이 아니라 ‘기업 예측’에 가깝다. 그리고 그 예측은 밥 먹고 분석만 하는 애널리스트도, 구독자 100만 유튜버도, 심지어 그 회사 사장님도 틀린다. 하물며 진료 보느라 바쁜 내가 그걸 맞힐 수 있을까?


ETF는 솔직히 재미없다. 상한가를 가는 일도 거의 없고, 자고 일어났더니 두 배가 되어 있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도파민을 추구하는 투자자에게 ETF는 지루한 다큐멘터리 같은 존재다. 하지만 ETF에는 개별 종목에는 없는 치명적인 장점이 있다.

첫째, 자동으로 분산된다. 한 기업이 망해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둘째, 구조와 흐름에 투자한다. “누가 이길까”가 아니라 “이 판이 계속될까”를 묻는다. 반도체 기술이 중요해질까? 미국 경제는 계속 굴러갈까? 인플레이션이 오면 금(Gold)은 방어막이 되어줄까?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은, 개별 기업의 다음 분기 영업이익을 맞히는 것보다 훨씬 쉽고 예측 가능하다.


나는 전업 투자자가 아니다. 진료실을 지켜야 하는 개인 투자자다. 그리고 우리 같은 개인에게 가장 부족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집중력’이다. 개별 종목으로 승부를 보려면 공시를 뜯어보고, 실적을 해석하고, 시장의 미세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 솔직히 의사에게 이건 꽤 버거운 일이다. 하루 종일 외래 보고, 수술하고, 병원 운영 회의까지 하고 나면 100페이지짜리 기업 탐방 리포트를 읽을 체력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ETF는 다르다. 자주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고, 방향만 맞으면 수익이 난다. 설령 판단 실수를 해도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ETF는 한마디로 ‘덜 똑똑하고, 덜 부지런해도 살아남는 투자’다. 게으른 천재를 꿈꾸는 나는 이 점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


나는 일찌감치 인정했다. 내가 개별 기업의 흥망성쇠를 맞히는 ‘작두 탄 무당’의 재능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전략을 바꿨다. 기업 대신 국가를 고르고, 종목 대신 산업을 고르고, CEO 대신 시대의 테마를 고른다.

S&P500 ETF를 사는 건, 다음번 아이폰이 대박 날지를 맞히겠다는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시스템이 쉽게 망하지 않을 것’에 베팅하는 것이다. 반도체 ETF를 사는 건, 특정 회사의 수율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AI 시대에 반도체는 쌀과 같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것이다. 이건 예언의 영역이 아니다. 상식의 영역이다.


내가 개별 종목의 유혹을 뿌리치고 ETF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이 아니다.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밤에 잠이 잘 오고, 진료 중에 주식 창을 훔쳐보지 않아도 되고, 시장이 폭락해도 “아, 또 사이클이 도는구나” 하고 넘길 수 있다면, 그 투자는 내 그릇과 성향에 딱 맞는 투자다.

지금의 나는 투자로 인생을 180도 바꾸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인생과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짜릿한 테마주 대신 심심한 ETF를 고른다. 남들보다 빨리 재벌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어이없이 가난해지지는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