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의 여름
수박을 다섯 통째 먹고 있다.
수술 후 입맛도 없고, 입속도 텁텁하고, 뭘 먹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는데
수박만큼은 손이 자꾸 간다.
시원하고 달고, 물처럼 술술 넘어간다.
이쯤 되면 이유 없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 몸이 아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박이 이뇨작용이 있다는 건 너무도 유명한 얘기인데,
내 안의 무언가, 수술로 남겨진 찌꺼기 같은 것들을
빨래하듯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작동한 건 아닐까.
몸은 솔직하니까.
남편은 수박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가 결혼한 이후엔 거의 사 먹은 적이 없다.
“너무 비싸”
그 말 한마디에
1년에 한 통, 그것도 여름 한가운데 한 번 사면 끝이었다.
작년 여름도 그랬다.
그 귀한 수박을 반으로 자르고,
가장 빨간 속살은 한 조각씩 아껴가며 먹었다.
남편의 고향은 고창이다.
들판 넓은 땅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았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마당 한편에 수박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그때는 부러 조심스럽게 먹을 필요도 없었다고.
가장 달고 빨간 가운데를 숟가락으로 파먹고
나머지 부분은 소 먹이로 주었다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알 수 없는 거리감 같은 걸 느꼈다.
같은 수박인데,
그 사람에게는 기억이고,
나에게는 사치였다.
그랬던 그가 올해는 수박을 마구 먹는다.
내가 사두면 혼자서 반 통을 뚝딱 해치운다.
“내가 산 것도 아니잖아.”
그 말은 맞지만, 그 말이 얄밉다.
그렇게 말하면서 수박을 한 조각, 또 한 조각 먹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얄밉고, 조금은 안쓰럽다.
뭔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허락받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달려드는 모습.
지켜보는 마음은 복잡하다.
올해 나는 수박을 다섯 통째 먹고 있다.
그도 나도
예전보다 더 많이 먹는다.
그 사이에 무엇이 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여름이 더워졌고,
몸은 조금 지쳤고,
마음은 어딘가 다 풀리지 않은 채로
수박의 시원함에 기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박이란 건
그저 과일 하나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많은 감정이 묻어나는 걸까.
그걸 생각하면서
또 한 조각,
입 안에 넣는다.
“어쩌면 이 여름, 내 안의 무언가도 수박처럼 갈라져 나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