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 일은 묘한 경험이다. 오래된 문장인데도 지금의 삶을 정확히 향해 질문을 던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마다 깨닫게 된다.
맹자를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문장들이 많다. 동시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장들도 있다. 어떤 말은 깊은 통찰처럼 느껴지고, 어떤 말은 시대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고전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글이라기보다,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텍스트에 가깝다.
맹자를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결국 '인간의 도리'였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누가 정말로 단정할 수 있을까.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결국은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일 뿐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놀랄 만큼 선한 순간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이기적인 순간도 있다. 하나의 문장으로 단정하기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도 복잡하다.
그럼에도 맹자는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말했다. 그 말이 절대적인 진리라기보다는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희망처럼 느껴졌다. 인간은 선하다고 믿어야 사회도 선한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까.
맹자를 읽으며 오래 머문 대목이 하나 있다. 세 개의 단어였다. 지언, 호연지기, 부동심.
'지언'은 말을 알아보는 지혜다. 사람의 말 속에 담긴 의도와 논리를 분별하는 능력이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진심이고 무엇이 꾸며진 말인지 가려내는 감각이 필요해진다.
'호연지기'는 성대한 기운이다. 의로운 삶을 오래 쌓을 때 마음속에 자라나는 넓고 당당한 기운. 단숨에 만들어지는 힘이 아니라 삶의 태도 속에서 천천히 형성되는 힘이다.
그리고 그 끝에 '부동심'이 있다. 외부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 이익이나 비난, 유행이나 압박 앞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상태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이어져 있다. 말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기고, 그 위에 삶에서 길러진 기운이 쌓이면 결국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 마치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처럼.
바람은 늘 불고 계절은 계속 바뀐다. 이익과 욕망, 경쟁과 소음이 끊임없이 마음을 흔든다. 그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맹자가 말한 '인간의 도리'에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더욱 필요한 세 가지다. AI는 계산을 더 빠르게 하고 정보를 더 많이 처리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말을 믿어야 하는지 분별하고, 어떤 삶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며, 외부의 소음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고전을 읽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묻는 일에 가깝다. 맹자의 모든 말에 동의하진 않아도, 그가 던진 질문들은 2,0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지.
아마 고전을 읽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오래된 책 속에서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에 필요한 질문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서. AI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남는 건 질문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