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너도나도 챗GPT에게 묻는다.
과제도, 기획도, 글도, 심지어 메시지와 편지까지 대신 써달라고 한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냥 챗GPT한테 물어보면 돼."
와, 그 정도로 의지한다고?
챗GPT를 늦게 접한 나로서는 그 장면이 낯설었다. 황당하기도 했고,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졌다. 편리하다는 건 알겠는데, 그 이상으로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점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줄여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아주 미묘한 불안 같은 거랄까.
나도 다르지 않았다. 글을 쓰다 막히는 대목에서 한참을 붙들고 씨름하다가 결국 대화창을 열었다.
"이 부분 좀 정리해 줘."
몇 초 뒤, 매끄러운 문장이 도착했다. 놀라울 만큼 정돈된 문장. 편리했다. 그리고 동시에. 묘하게 불편했다.
이쯤 되니 이런 의문이 든다.
읽고 쓰는 일은 이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속도가 전부인 시대에, 사유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
오래 고민하며 흩어놓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가지런해지는 걸 보면서 안도감이 들기보다는 무언가를 충분히 지나오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하면 생각도 함께 단축되는 건 아닐까. 몇 시간을 붙들고 씨름하던 문장이 몇 초 만에 완성되는 세상이라니.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AI는 분명 강력한 존재다. 빠르고 정확하고 지치지도 않는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나 역시 그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겠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답이 너무 쉬워질 때, 사람은 질문을 덜 하게 되지는 않을지.
요즘 사람들은 묻는다기보다 요청한다.
"요약해 줘."
"정리해 줘."
"결론만 말해줘."
그 사이에서 조금씩 고민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을 보며 생각이 더 깊어진다. 무엇이든 검색하면 답이 나오는 세상에서, 설명은 친절하고 속도는 빠른 이 세상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줘야 할까.
빠르게 답을 찾는 방법인가.
아니면 질문을 붙드는 태도인가.
나는 AI를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글이 막힐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정리가 필요할 때 손을 빌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까지 맡기고 싶지는 않다. 무엇을 묻는지, 왜 그 질문을 던지는지, 그 질문에 어떤 삶의 무게를 담을지 결정하는 일만큼은 내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AI는 답을 만든다. 점점 더 정교해질 거고.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방향도 함께 타인에게 넘겨진다.
그래서 나는 '느린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조금 더 오래 읽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서툴더라도 내 문장을 다시 써보면서.
비효율적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생각이 나를 통과하는 시간 아닐까. AI를 이용하며 살아가되 인간성을 놓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답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묻는 힘이 더욱 귀해질 테니까.
아이들에게도 같은 걸 건네고 싶다.
빠른 답을 찾는 능력보다 스스로 묻는 힘을.
흔들리더라도 자신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