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들의 말투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순간, 표정 뒤에 숨어 있는 기류,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고 있는 관계의 결. 그런 것들을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감지하곤 했다.
문제는 그것이 늘 축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쉽게 피곤해졌고, 쉽게 압도되었고, 쉽게 상처받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조금 덜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금 덜 복잡하게 생각하고, 조금 덜 흔들리고, 조금 덜 깊이 받아들이며 살 수 있다면 훨씬 편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예민함은 단지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 아니었다. 남들이 놓치는 뉘앙스를 더 많이 받아들이는 감각의 구조였고, 세상을 조금 더 깊은 층위에서 통과시키는 신경의 방식이었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내 안에서는 더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하나의 말이 여러 개의 질문을 낳고, 하나의 표정이 오래 남아 의미를 바꾸고, 하나의 사건이 수많은 연상과 해석을 불러온다. 내 안의 하드 드라이브는 빨리 차오른다. 그러니 자주 과부하가 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대신 남들보다 더 기쁨을 자주 경험한다. 문장 하나에 오래 붙들릴 수 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 하나에 마음이 환해지고, 햇빛과 바람, 좋은 책과 다정한 말 한마디로 금세 살아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니 이것을 단순한 약점으로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예민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는 문장을 어딘가에서 읽었을 때 크게 공감했다. 맞다. 나는 늘 속사정을 알고 싶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보다 그 안쪽에 있는 감정과 맥락, 구조를 보려 했다. 누군가의 말보다 그 말 뒤에 있는 마음을, 한 시대의 비극보다 그 비극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게 했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거 아닐까.
나는 그저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 그래서 심리학 책을 읽었고, 에세이를 읽었고, 소설을 읽었고, 역사를 읽었다. 책을 1,000권 읽고 나서 깨달은 것도 지식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약했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쉽게 무너지면서도 놀라울 만큼 버텨냈다.
예민한 사람은 부당함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내가 예민함을 약점으로만 볼 수 없게 된 이유도 이 감각이 세상의 부당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누가 무시당하고 있는지, 어떤 자리에서 인간성이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지 예민한 사람은 대개 빨리 알아차린다.
나 역시 그렇다. 사람이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순간, 누군가의 진심이 값없이 소비되는 장면, 힘이 약한 쪽이 일방적으로 상처받는 구조를 보면 그것이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억울함에도 민감했다. 오해를 받으면 풀고 싶었고,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 싶었다. 이해받고 싶었다기보다 왜곡된 채로 남아 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모든 억울함을 다 해명할 수는 없고, 모든 오해를 다 바로잡을 수도 없다. 예민한 사람은 세상의 어긋남을 빠르게 감지하는 대신 그 어긋남에 자신까지 휩쓸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법도 배워야 한다. 세상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능력과 그 고통에 압도되지 않는 능력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외향적이면서도 예민한 사람이다.
보통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조용하고 내향적인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높은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내향적인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모두 그렇진 않다. 나는 잘 웃고, 에너지가 많으며,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좋아한다. 흥미로운 경험에 끌리고, 여행을 좋아하고, 전에 가보지 않은 장소에 가면 조금 살아나는 사람이다.
동시에 아주 쉽게 지치기도 한다.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린 날에도 반드시 혼자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나눈 뒤에는 그 인풋을 정리하고 소화하는 고요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없으면 나는 금세 날카로워진다. 사소한 것에 짜증이 나고, 타인에게 너그러웠던 마음도 메말라간다.
예전에는 이 두 얼굴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어떤 날의 나는 사람들 속에서 반짝였고, 또 어떤 날의 나는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때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심장이 뛰었고, 어떤 때는 너무 많은 자극에 질려 혼자 숨고 싶었다. 사실 이 상반되어 보이는 두 모습이 서로를 지우는 게 아니라 함께 '나'를 이루는 건데 말이다. 밝고 활달한 면과 섬세하고 쉽게 압도되는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사람. 둘 다 나다.
좋은 엄마이고 싶어서, 너무 많이 소모되기도 했다.
예민한 사람은 부모로서 좋은 자질을 많이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상황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진심으로 애쓴다.
나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한다. 내 삶에서 가족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자리였고, 특히 두 아이는 내 목숨보다 귀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이해해주고 싶었고, 더 세심하게 돌보고 싶었고, 적어도 내가 지나온 상처의 결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이 크면 기준이 높아지는 걸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 아이들을 잘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꿈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망, 관계와 일상까지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나는 자주 지나치게 많이 애썼다.
그러다 에너지가 바닥이 나면 무너졌다. 혼자 있고 싶어졌고, 아주 잠깐이라도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예민한 사람에게 고요는 사치가 아니라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라는 걸. 혼자 침잠하는 시간, 읽고 쓰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은 나를 다시 나답게 돌려놓는다.
예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분위기를 원하고 있는지 남들보다 빨리 감지한다. 그래서 적응을 잘한다. 관계의 결을 읽고, 분위기에 맞게 자신을 조정하고, 가능하면 갈등을 피하려 한다. 나도 그랬다. 되도록 불편을 만들지 않으려 했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힘들어했고,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맞춰주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오래 맞추며 살다 보면 정작 내 본성이 가장 곤란한 순간에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오래 참고, 오래 버티고, 오래 눌러두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선이 넘어가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전까지 내가 얼마나 애써왔는지는 모른 채 지금 드러난 불편함만 본다. 그제야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고, 고집스러운 사람이 된다.
예민한 사람이 자주 느끼는 억울함도 어쩌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경계가 필요하다. 관계를 오래 지켜내고 싶다면. 내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맞추지 않기 위해, 결국 한순간에 폭발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는 경계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느낀 게 있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또 사람들 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두려움을 녹이는 해독제가 되어 준다.
예민함은 다스려야 할 약점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힘이다. 예민한 사람은 삶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더 크게 느끼기 때문에 세상의 불의와 고통에 더 쉽게 압도될 수 있고, 동시에 작은 행복과 기쁨으로도 깊이 충만해질 수 있다. 그래서 예민함 자체보다 그 예민함을 다루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자극을 조절하지 못하면 쉽게 무너질 수 있고, 자기 한계를 지각하지 못하면 탈진할 수 있고, 완벽을 추구하다가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소진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예민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알아차리는 일이다. 지금 내 몸이 어떤지, 에너지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무엇이 나를 살리고 무엇이 나를 닳게 하는지, 어디까지는 감당할 수 있고 어디부터는 무너지는지 제때에 감지하는 일. 그리고 그 경계를 존중하는 일. 경계를 무너뜨리며 자신을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경계 바로 앞의 가장 충만한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경계도 조금씩 넓어질 수 있다.
예민함은 나를 힘들게 한 만큼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힘이기도 했다. 이제는 예민함을 고쳐야 할 결함처럼 보지 않으려 한다. 대신 다루어야 할 힘, 존중해야 할 재능, 잘 보호해야 할 본질로 받아들이려 한다.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추느라 나를 잃어버리기보다, 본연의 나를 조금 더 정직하게 드러내면서.
나를 이해하는 일이 결국 나를 보호하는 일이 되고, 그 보호가 있어야 타인과도 오래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