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
사람마다 이것만 좋아지면, 저것만 고치면, 여기만 채우면 살 만할 것 같고, 행복해질 것 같은 그 무엇을 안고 산다. 그러면서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그 무엇’을 붙들고 평생을 씨름한다. 내게는 아픈 가족관계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 풀리지 않는 가족 간의 갈등이 나를 성장시키고 있더라는 거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애면글면하는 사이 영혼의 시선은 그 높이를 점점 더해가고 있더라는 거다.
평생 물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늘 같은 길을 오가며 물을 날랐다. 어느 날 문득 그는 보았다. 자신이 오간 길의 한쪽 편에만 소박하고 키 작은 들꽃들이 옹기종기 줄을 지어 피어 있는 것을. 다른 편에는 팍팍한 흙먼지만 일고 있는데. 그는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지고 다닌 물동이 중 하나에 금이 가서, 길을 오가는 동안 계속 물이 새어 나와 땅을 적시고, 이곳저곳에서 날아 들어온 꽃씨들을 그 촉촉해진 땅에 앉게 하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했다는 것을. 또한 그는 보게 되었다. 아무런 손상 없이 매끄러운 물동이가 오간 쪽의 길은 푸석하고 메마른 흙덩이 그대로라는 것을.
이런 것이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는 약점과 실패와 좌절과 붙잡힌 발목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깨진 항아리 같은 내 모습이, 실은 나를 성장시켜 시나브로 나 바깥의 것에까지 아름다운 향기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결핍을 그대로 인정하고 껴안아 버리면 그 부족함과 모자람이 나를 성장시키고 타인을 위로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신아연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