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철학을, 철학에 일상을 13
간밤 꿈이 어지러웠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영안실에 내가 서 있었다.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아마도 합동 장례를 치르는 날인 것 같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합동 장례식이란 게 있다고? 그러니 꿈이지.
꿈은 막내린 어느 개그 프로그램 이름처럼 '아무 말 대잔치'다. 사망자들의 관이 컨베이어 벨트에 놓여 줄줄이 실어져 나왔다. 관은 널빤지 쪼가리를 이리저리 못질해서 겨우 형태만 잡아놓았다. 옛날, 나무로 만든 사과 궤짝이 연상됐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고인들이 화장장으로 떠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나와 어머니는 어둑시근하고 후미진 곳에서 관이 실려 나오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우두망찰하고 있는데, 무연고 사망자들 가운데 내가 있는 것을 알아챘다. 나의 장례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퍼뜩 깼다.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장례에 관한 꿈은 마음의 찌꺼기를 청산함, 재출발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럴 듯한 해몽이다. 죽음이 있어야 탄생이 있는 법이니. 그런 꿈 풀이라면 지금 내 상황에선 길몽이다.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난 8년간을 무연고자처럼 견뎌왔다. 글을 써서 육신을 먹이며 마음과 영혼을 돌봤다. 오직 글과 함께 뚜벅뚜벅 걷는 사이, 상황은 시나브로 좋아져 갔다. 고통스럽고 혼란스럽던 과거의 나를 꿈속에서 또 한 차례 장례 지냈다. 무의식은 의식의 통제를 받지 않으니 의도하지 않은 어젯밤 꿈으로 인해 치유 되어 가고 있는 나를 확인한다. 상큼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