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해야 아무 것도 안한다

하루보듬 도덕경(73/1장)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어제는 ‘깜짝 가을’을 맞았지요. 절기를 명확히 반영하는 계절의 변화가 새삼 놀라웠습니다. 하늘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긴 것 같지만 무엇 하나 빠뜨리는 것이 없다더니. 자연법칙의 오묘함이 곧 '하늘그물'이겠지요. 오늘 살필 도덕경 73장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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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열 작가의 '심상'


아, 참 지난 주에 소개 드린 제 신간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를 벌써 구매하러 가신 분들이 있었는데 책은 이번 주에 나올 예정이라 헛걸음들 하셨지요? 저는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맞추느라 미리 소개글을 올렸는데 그렇게 바로 구매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책이 나오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서점 배포는 온라인보다 일주일 정도 늦어지더라구요, 전의 경험들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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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


책 한 권이 독자들 손에 쥐어지기까지 3단계를 거칩니다. 우선 글을 써야 하고요, 그 다음은 출간 업무가 진행되고, 마지막 단계는 홍보입니다. 광고는 또 하나의 단계지만 그건 돈이 개입되는 별개의 일이지요. 이번에도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저는 도덕경 73장을 떠올렸습니다. 73장에서 뭐라고 했길래요? 우선 읽어보지요.



밀어붙이는 것에 용감하면 죽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에 용감하면 산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하늘이 마땅찮아 하는 이유를

그 누가 알리요?

성인마저도 분간하기 어렵다.


하늘의 도는

겨루지 않아도 거뜬히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응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어

느슨한 것 같은데도 빈틈이 없다.


하늘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긴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


느낌이 오는지요? 무위와 유위의 대비지요. 첫 단락을 보세요. 유위에 용감한 것과 무위에 용감한 것을 대비하고 있잖아요.


저는 ‘용감해야 무위한다’는 것에 큰 영감을 받습니다. ‘용감’은 무엇을 투쟁적으로 하는 일에 붙이는 말인 줄 알았는데, 무엇을 억지로 안 하는 것도 용감해야 가능하다고 하니까요. 더구나 하늘은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는 말로 ‘하지 않는 용감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물론 아니고요. 무위로 한다는 거지요. 계절 변화처럼.


이 말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실감하지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내게 이럴 수 있냐!”는 레퍼토리는 전형적인 유위버전이지요. 어떻게 키우기는 뭘 어떻게 키워요. 밀어붙이는 것에 용감하게 키운 거죠. 억지로 한다고 따라오지 않잖아요. 심하면 자녀들의 영혼이 망가지지요.


있는데도 안 해주는 것이 없어서 못해주는 것보다 훨씬 참기 힘듭니다. 절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지요. 돈 있어서 자식 망치지 돈 없어서 망치나요? 영혼을 망친다는 의미에서.


책을 내는 일도 같습니다. 글이 억지로 써질 리가 없으니 그것까지는 필자 본인의 소관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위의 용감함'이 요구됩니다. 관계의 조율이 시작되는 거지요.


저는 출판사와 예술에 가까운 하모니를 이뤄냅니다. '책과 나무' 출판사에서 6권의 책을 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불협화음을 낸 일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출판사 대표께서 무위의 달인이시죠.^^


이제부터는 홍보단계에서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동원해야 합니다. 매체에 관여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청하는 거지요. 우리 자생 글방에도 여러분이 계십니다. 저를 가장 감동시킨 분은 제가 미처 부탁도 안 드렸는데 먼저 행동을 취해주신 <인터뷰 365>의 김두호 발행인님!

http://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103139



그 밖에 "우리 매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주겠다"는 응답, 흔쾌히 "도와 주겠다"는 말씀들이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응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는’ 노자 말씀을 체험합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들 배려하고 격려해주시는지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부탁을 잘하는 편입니다. 들어주고 말고는 상대의 결정이니 내가 관여할 게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나는 오직 부탁할 뿐, 그야말로 아님말고지요.^^


‘간곡히’ 부탁을 드렸으나 ‘완곡히’ 거절당한들 무슨 큰 일입니까. 내 부탁이 반드시 들어줘져야 한다는 조바심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부탁이 들어줘질 때가 많습니다. ‘무위의 부탁법’이라 할까요?


제 경험을 나눴습니다만, 여러분은 어떤지요.

73장 내일 계속 살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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