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루보듬 도덕경(73/2)

by 신아연

지금 창밖의 비는 여름을 설거지하고 가을 식탁을 차리기 위함이겠지요. 요즘은 빗소리만 들려도 홍수 상흔을 겪은 사람들이 떠올라 미안하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한 동안 그러겠지요...


어제 우리는 무식하면 용감한 게 아니라, '무위하면 용감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무위는 아무것도 안하는 게으름이나 나태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처럼 언제 보니 성큼 와있는, 표나게 설치지 않았는데 일이 되어있는 '차원 다른 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이 없는 함'이라고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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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수 작가의 '비 개인 지리산'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지요. 도통한 사람은 한 치 앞 정도는 볼 수 있겠지요. 도사들은 죽음이 임박하면 자신이 죽을 날을 안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만약 시간 밖에 있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육을 입고 있는 한 그 누구도, 심지어 성인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죠.


하늘이 마땅찮아 하는 이유를

그 누가 알리요?

성인마저도 분간하기 어렵다.


이 말이 그 말인거죠. 그런데 뭘 알 수 없다는 거지요? 하늘이 뭘 마땅찮아 한다는 거지요? 모든 것은 때가 있음에도, 콩나물이 자라는 게 당장 안 보인다고 잡아뽑을 수 없듯이 어떤 일을 되게 하자고 억지로 끌어당기고 밀어붙이고 하는 '인간의 유위'를 마땅찮아한다는 거지요.


그렇게 되면 헛힘을 빼기 때문에만 문제가 아니라, 때를 잘못 맞춤으로 인해 일을 아예 그르치게 되는 게 더 문제겠지요. '만사에 때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때'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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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수


그러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비로소 보입니다. 지나온 시간은 빠져나온 시간이니까요. 경험한 시간이니까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게 아니라 '지나면 비로소 보이는' 거지요. 그렇지만 여전히 또 앞은 안 보입니다. 또 지나가야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꼭, 반드시, 필연코, 절대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다른 말로 시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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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저자신아연출판책과나무발매2022.08.26.



아, 참.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가 나왔습니다. 주문하시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컴퓨터를 새로 장만할 수 있을 정도는 팔렸으면 좋겠네요. 조력사 하신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컴퓨터를 사 주겠다고 했는데 제가 안 받았다고 했잖아요. 이제 책이 팔려 컴퓨터를 바꾸게 된다면 결국 그분이 사주시는 거가 되겠지요.


본인 이야기를 쓴 책으로 제 궁핍에 잠깐이나마 해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유언아닌 유언도 하셨지만, 저는 그분을 생각하면 그저 아프고 슬플 뿐입니다. 떠나시던 날, 그 천애고독의 표정과 여윈 뒷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아립니다.


제 컴퓨터는 아직 버텨주고 있습니다. 간간히 호흡곤란과 섬망 증상을 보이지만 그 어떤 연명치료나 조력자살을 거부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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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수


제 73 장


밀어붙이는 것에 용감하면 죽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에 용감하면 산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하늘이 마땅찮아 하는 이유를

그 누가 알리요?

성인마저도 분간하기 어렵다.


하늘의 도는

겨루지 않아도 거뜬히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응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어

느슨한 것 같은데도 빈틈이 없다.


하늘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긴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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