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보듬 도덕경(73/3장)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거나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저주, 거꾸로 ‘하늘이 도왔다’거나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소망은 자연법칙 밖의 어떤 영향력을 인정할 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 영향력이란 비록 막연하고 아득해도 이 세상이 전부는 아니라는 시간 밖의, 시간을 초월하는, 변하지 않는 어떤 고갱이, 73장의 표현으로는 ‘하늘그물’의 힘이지요.
양승국 / 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겨루지 않아도 거뜬히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응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어
느슨한 것 같은데도 빈틈이 없다
하늘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긴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
겨루지 않았는데 이겨 있고, 말하지 않았는데 응답되어 있고, 부르지 않았는데 이미 와있고, 느슨한 것 같은데도 빈틈이 없다’는 말 자체가 비논리적이죠. 말이 안 되지요. 일단 겨뤄야 이기든 지든하고, 말을 해야 응하든 말든하고, 불러야 오든 말든하며, 느슨하면 다 빠져 나가는 게 맞지요. 육의 눈으로 보면, 머리로 이해하면 그게 맞지요.
그런데 영의 눈으로 보면, 노자 표현으로는 도의 관점에서는 그게 가능하다는 거지요. 왜냐하면 하늘그물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는 도에 관해 다양한 비유와 상징을 배웠는데, 73장에서 도는 '하늘그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 '라는 말은 도는 이성으로, 육의 눈으로는 파악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시간 속에 현현하지만 시간 자체에 매이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만나기 전에 하던 그물질이 육과 혼의 그물질이라면, 예수님 만난 후의 그물질은 영의 그물질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그물을 도의 그물, 하늘의 그물로 바꿔 주셨기에. 그 그물로 이제는 사람을 낚으라며.
결국 베드로가 그렇게 했습니까, 못했습니까. 했지요. 우리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못하겠습니까. 우리도 할 수 있지요.
어제 제가 시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한 것이 그런 뜻입니다. 시간의 포로가 되어 울고 웃고, 지지고 볶으며 고통당하다가, 늙고 병들어 결국은 죽는, 비참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지 않아도, 그 바퀴에 깔려 죽지 않아도 되는 ‘탈시간’의 길이 있습니다.
그럴 때 '겨루지 않아도 거뜬히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응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는' 상황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하늘에 접속하면 됩니다. 하늘에는 또 어떻게 접속하냐고 물으신다면, 영안(직관)으로 접속한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영안은 또 어떻게 열리냐고 묻고 싶겠지요?
그건 내일 '영혼의 PT' 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73장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제 73 장
밀어붙이는 것에 용감하면 죽고
밀어붙이지 않는 것에 용감하면 산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하늘이 마땅찮아 하는 이유를
그 누가 알리요?
성인마저도 분간하기 어렵다.
하늘의 도는
겨루지 않아도 거뜬히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응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와 있어
느슨한 것 같은데도 빈틈이 없다.
하늘그물은 코가 넓어서
성긴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