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영혼의 PT(13)
어제 오후 저는 강남자생한방병원을 갔습니다. 발을 접지르는 바람에 치료 받으러 갔던 거지요. 자생은 저의 '육의 필요'를 이모저모 채워주지요. 밥벌이 장을 펼쳐주고 아플 때 치료와 때때로 보양차나 보약도 보내주시니까요. 또한 제가 '서당'을 열어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으니 자생을 통해 '혼의 욕구'도 충족 받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생한방병원'과 '영풍그룹'과 경제신문사 '이투데이'가 강남대로에 나란히 줄지어 있다는 것을. 각각 536, 542, 556 번지를 가진 세 기업.
그게 뭐? 세 업체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하실 테지만 저로서는 큰 연관과 의미가 있습니다. 자생과 이투데이는 제가 현재 글을 써서 원고료를 받는 곳이고, 영풍은 전 남편 직장이었으니까요. 대한민국이 아무리 좁기로 저를 먹여 살리는(던) 세 곳이 나란히 붙어있다는 것이 우연치고는 참 묘하지 않나요?
이 이야기를 왜 하냐면 이 시간은 영과 혼을 훈련하는 시간이잖아요. 제가 쓴 글 중에 '영과 혼의 차이는?' 이란 게 있었지요. 제 블로그에도 올렸는데 그 글이 꾸준히 읽힙니다. 그만큼 영과 혼에 대해 알고 싶고, 또한 그만큼 두 개념이 모호하다는 거겠지요. 저는 영과 혼의 차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PT'가 되었지요.
마치 생선가시 바르듯 그 둘을 삶 속에서 잘 발라낼 수 있어야 하는데요, 자생, 영풍, 이투데이가 제게는 그런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제가 30년 간 글을 썼으니 (실은 6살 때부터 썼으니까 엄밀히는 55년 간) 혼의 한 파트 훈련이 '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체화란 몸에 배였다는 뜻이죠. 습관이 되었다는 뜻이죠. 저절로 된다는 뜻이죠. 물론 글이 저절로 써지는 건 아니고, '글 쓰는 행위'가 몸에 배였다는 뜻입니다. 제게는 '몸짓'이 '글짓'인 거죠.
가령 무엇을 보거나 어디를 다녀 왔을 때, 남들은 그저 흘려버려도 저는 관찰하고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하여 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혼 훈련이 되어 그렇지요. 물론 글쓰기만이 혼의 훈련은 아니지만, 제 경우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혼이 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는 '영이 강한 사람'이 되려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아침에 성경을 5장 읽고 저녁에 또 5장을 읽습니다. 날마다 큐티와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신앙서적을 읽고, 예수님을 5분 이상 혼자 계시게 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는 글 생활처럼 영적 생활이 몸에 배여야 하니까요. 영성이 체화되어야 하니까요.
글 쓰기뿐 아니라 60평생을 혼적으로 살아온 제가 과거를 세탁하기 위해 물빼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남은 생을 계속 씻어내도 그 얼룩은 여전히 남을 테지만.
왜 그래야 하냐고요? 그래야 삶의 질서가 잡히니까요. 죄란 무질서란 말이 있습니다. 육, 혼, 영의 질서가 무너진 상태가 곧 죄라는 거지요. 육이 혼 무서운 줄 모르고 제멋대로 날뛰니까 육적 죄를 짓는 거잖아요. 폭력, 살인, 강간 등. 혼이 영의 지배를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구니까 또 죄 짓는 거고요. 횡령, 사기 같은.
질서의 최상위에 영이 있습니다. 영이 건강하지 않으면 혼과 육도 비실댑니다. 영이 훈련되어 '영안'이 열리면(제게 '글안'이 열려 있듯이), 남들이 갖지 못하는 지혜와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혼의 세계를 초월하는 일도 가능해 집니다. 시간밖으로도 나갈 수 있게 되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기독교 용어로는 '예언'이라고 하지요.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말하자면 저는 '자생,영풍, 이투데이'를 영적 눈으로, 영적 의미로 해석하고 싶은 거지요. 거기에 무슨 영적 의미가 있냐고요? 일상과 삶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