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감의 이름은 '조센징'

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10

by 신아연


저는 일본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 집요함이 좋아서 입니다. 인간 심리와 내면을 바닥까지 훑어내는 철저한 집요함, 읽다보면 넌더리와 구토가 날 지경이지요. 그 집요함이 일본의 기조 정서라면 100년 전의 진실규명에도 그 정서가 유감없이 발휘되길 기도합니다.



그날의 진실을 듣고자, 찾고자, 알고자, 캐고자 몰려든 400여 명, 무더위만큼이나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됩니다. 기록이 기억이 되고, 기억이 검증되어 진실의 퍼즐이 완성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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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대규모 학살현장 아라카와 강변에서 펼쳐진 2023 추모행사의 기억을 더듬으며 저도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립니다. 100년 전 그날의 한 자락 오라기나마 붙잡아 보려고 골똘히 골몰해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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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관동대학살의 진실을 듣고자 몰려든 취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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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기는 밤까지 이어져 국회의사당 앞 시위현장에는 500여 명으로 수가 더 불어나게 되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본인들이 주최한 이 뜨거웠던 관동대학살 100주기 행사는 물론, 다음 날 치러질 우리측의 추모제 또한 일본 언론매체 어느 한 군데에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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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대열에서 잠시 빗겨나 생각을 모으며 집중하고 있는 앳된 모습의 젊은 여기자,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까, 고심 중인 것 같습니다. 이 여성이 쓴 글은 어디에 실렸을까요?



이날 행사는 젊은이들이 진행하고 젊은이들이 학살의 내용을 고발하는 등, 젊은이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100년이 흐른 시점에서 진실규명의 바통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그리하여 관동대학살의 완전한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그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일본 양심의 집요한 결의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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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그날의 진실을 차례로 보고합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400명 참가자들이 숨 죽이며 귀를 기울이지만 '까막귀'인 저는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합니다. 되풀이 되는 '조센징(조선인)'만 들립니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 울컥 눈물이 솟습니다.



'조센징', 학살의 조건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되어야 했으니까요. 마치 토끼라는 이유로, 사슴이라는 이유로 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것처럼. 100년 전 그날, 조센징들은 일본이란 무자비한 사냥꾼의 가련한 사냥감이 되어 그렇게 비참히, 처참히 죽어갔던 것이죠.



영상 속, 호칭 '조센징'에 눈물이 나고 다리 위를 유유히, 한가히 지나는 열차들의 그 평화로움이 서러워 또 눈물이 납니다.




일본말을 잘 하시는 독자들은 아래 동영상을 저 대신 들어주십시오. 저처럼 전혀 모른다면 '조센징'에만 귀를 모아 주십시오.


https://blog.naver.com/timetosapyo/223235327627




행사 순서지에 낭독 내용이 실려 있지만 까막귀에다 까막눈인지라 저는 읽지 못합니다. 이번 일본 여정은 문맹의 안타까움 또한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계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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