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관동대학살 100주기 동행기 11

by 신아연


주말, 휴일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요즘 진한 흡인력의 무언가에 의해 이끌려 가는 느낌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큰 에너지가 어딘가로 저를 데려가며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하지 않던 말을 하며, 행위가 담대해집니다.



그 무엇, 큰 에너지는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이번에 일본을 가게 된 것도 제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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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ginakyurt, 출처 Unsplash





지난 5월 말, 호주에서 두 달을 머물고 돌아온 후 갑자기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간절히, 맹렬히. 한달한달 벌어먹고 사는 제 형편에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해외 여행은 언감생심임에도. 호주야 아이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취미도 없고, 음악도, 그림도 감상에 서툴고 방구석에서 오직 책 읽는 것만 좋아합니다. 그런 제가 애인이라도 둔 듯이 일본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끄달렸으니...



그 뜬금없는 열기의 정체는 관동대학살로 희생된 6661명 원혼의 부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해탄을 건너와 우리를 만나달라는.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우리를 기록해 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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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아연





저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 매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4년 째입니다. 김이사장님의 후반 인생 실천 계획 중 하나로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는 거지요. 글쓰기와 독서는 시니어들의 로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글쓰기는 저와 하고, 독서는 어느 번역가와 영어 원서 읽기로 하시죠.



8월 중순 경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일본을 가야해서 9월 첫주는 수업을 못할 것 같은데..."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


"씨알재단 주관으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열게 되었거든. 관동대학살이라고 들어봤나?"


"물론이지요. 아, 그 행사를 씨알재단에서..."


"응, 100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는 거지."



나도 모르게 불쑥,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저도 가면 안 될까요?"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마치 밥 먹다 입에서 밥알이 튀어나오듯.



"아, 그래?"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시는 이사장님. 식사 중 뒤늦게 일행이 나타나자 주방을 향해 "여기 짜장면 하나 추가요~~." 하는 분위기로. 발권을 위해 당장 여권(사본)을 보내달라는 사무국장.



그렇게 해서 급작스럽게 일본행이 성사된 것입니다. 제게는 기도 응답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생명'을 보듬는 일이었습니다. 무참히 짓밟혔던 과거 생명을 돌아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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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하나님은 제게 생명을 돌보라는 사명을 주신 것 같습니다. 관동대학살 현장 방문으로 과거 생명 돌봄을, 스위스 안락사 동행을 계기로 한국의 안락사(조력사) 합법화를 막으라는 현재 생명 돌봄을, 청소년 인성교육교재 집필로 미래 생명 돌봄을, 그리고 또 하나의 '생명프로젝트'인 '묻지마, 사랑' 모임까지.



'묻지마, 살인'이 있다면 '묻지마, 사랑'도 있는 법, 선착순으로 5인이 결성되어 11월부터 만남을 시작합니다. 제가 하는 생명프로젝트 중 유일하게 글로써가 아닌 직접적 만남입니다.



무엇보다 제게는 전남편의 생명을 돌보는 간곡한 미션이 있습니다.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날마다 눈물의 기도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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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영식





다시 관동대학살로 돌아와, 그렇게 추모제에 합류한 후 다녀왔다는 보고서 정도로 쓰려던 글이 자꾸만 부피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이런저런 자료를 제게 가져다 주시기 때문이죠. "저기가 관동대학살 맛집 같아. 저집으로 식재료를 보내자." 하는 마음들인가 봅니다.



그래서 저는 아예 책을 낼 각오를 합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이끄심인 줄 믿고 순종하며.



임신했을 때는 배부른 여자만 보이듯이 생각이 온통 관동대학살에 꽂혀 있으니 관련된 것들이 자꾸 눈에 뜨입니다.



관동대학살 100년을 기념하여 10월 26일에는 이런 공연도 있네요. 에스페란티스토 미야자와 겐지의 <비에도 지지 않고>를 비롯하여 락발라드, 국악풍, 포크송, 동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무대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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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ver.me/5K5ZeWys







이번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듀오아임의 주세페와 구미꼬는 부부 음악인이자, 아내 구미꼬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동생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피가 함께 흐르는 구미꼬로 인해 이번 공연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망각의 100년을 깨우는 진혼의 밤에 독자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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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아임 주세페 구미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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