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와의 악연인가, 모험가와의 악연인가
2026년 1월 28일, PC MMORPG게임 던전앤파이터의 퍼스트 서버에 ‘디레지에-악연’이 업데이트됐다. 지난 12월 출시 이후 잦은 버그와 늘어지는 템포로 혹평받았던 디레지에 레이드의 상위 버전이자, 명예 회복을 위한 승부수였다. 개발진은 지난 두 달간 버그를 수정하며 모험가들과의 신뢰를 다시 쌓으려 노력했고, 유저들 역시 이번 '악연'은 처음보다 나을 것이라 기대하며 퍼스트 서버에 접속했었다. 하지만 업데이트와 함께 쌓아가던 신뢰는 다시금 무너져 내렸다.
레이드의 진행 방식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기존 디레지에 레이드의 가장 큰 문제였던 지루함을 덜어내기 위해 일반 몬스터 구간을 줄이고, 네임드와 보스 러시 형태로 구성한 점은 던파의 슬로건인 '액션 쾌감'을 어느 정도 만족시켰다. 그러나 클리어 횟수가 늘어날수록 기대와 흥분은 빠르게 식어갔다. 과연 '악연'이 두 달을 기다릴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해 모험가들은 의문을 제기했다.
첫 번째 문제는 '새로움'의 부재였다. 디레지에 조우 시 추가된 패턴은 기존 융합체 몬스터의 패턴을 단순히 섞어놓은 수준에 불과했다. 더욱이 4페이즈 진입 연출은 지난 안개신 레이드의 화면 전환 연출을 그대로 가져왔다. '최종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자가 복제'와 '재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설정을 무시한 연출 또한 도마 위에 올랐다. 1페이즈에 등장하는 디레지에는 설정상 본체가 자신의 사념을 잡아먹고 변한 모습이다. 즉, 분신이나 복제가 아닌 이상 셋이 동시에 본체로 존재할 수 없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등장해 몰입감을 깼다. 또한, 중천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배경 속 주민들이 아무런 움직임 없이 마치 배경 그림처럼 굳어 있다는 점도 긴박해야 할 레이드의 분위기를 반감시켰다.
보상의 매력도 부족했다. 중천 시즌의 첫 레이드였던 ‘나벨’과 비교해 명성 요구치는 2배 가까이 뛰었지만, 보상은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 장비 업그레이드 재료와 경매 주화 품목이 조금 달라진 것을 제외하면, 더 어려운 도전에 대한 확실한 보상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가장 큰 불만의 목소리는 역시 밸런싱이었다. 69개의 직업, 수십 종류의 무기와 세트 아이템을 가진 던파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기대하는 모험가는 드물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시간과 돈에 의해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천 시즌 1년이 지났음에도 직업 간 격차는 여전하며, 특히 '플래티넘 크리쳐'의 도입은 이 격차를 심화시켰다. 외부 딜표 사이트(던담 등)에 의존하는 게임 특성상, 구조적 한계를 가진 하위권 직업들은 '악연'에 진입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월 6일 본서버 적용을 앞두고 10개 직업 상향을 예고했지만, 이미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던전앤파이터가 서비스된 지 20년, 직접 즐긴 지도 10년이 넘었다. 인생의 반을 함께한 이 게임이 즐거울 수 있었던 건 단순히 게임성 때문만이 아니라, 개발진과 유저 사이에 쌓인 '신뢰' 덕분이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더라도, 불편함을 고치고 소통하려던 모습이 지금의 던파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보여준 밸런스 방치, 레이드 퀄리티, 그리고 과금 유도(크리쳐)는 그 20년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 곧 다가올 진정한 최종전 '천해천'을 앞둔 지금, 이번 업데이트가 모험가들과의 질긴 '악연(惡緣)'으로 남을지, 아니면 잘못된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던파의 앞으로의 행보가 우려와 함께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