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칼럼]숫자와 메이플스토리의 벽

by 이루

'덕업일치'라는 말이 있다. 취미로 하던 일, 그 좋아하는 일이 그대로 직업이 된다면 만족도는 최상이란 말이다. 나 또한 동일했다. 학창 시절, 게임을 누구보다 좋아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 몰래 도망쳐 나와 학원을 간다는 핑계로, 또 서버가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병원을 핑계로 수업 시간에 도망쳐 나와 PC방을 갈 정도로 게임에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그랬던 만큼, 지금의 게임 기자라는 직업 만족도는 최상이다. 누구보다 다양한 게임을 접하고, 관련된 소식을 전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 하나, 다시 접하기엔 부담이 가는 게임이 있다. 국내 MMORPG를 이야기할 때, 꼭 한 번씩 언급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다.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메이플스토리의 만렙은 200이 끝이었다. 스트리머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씩 꾸준히 한다면 달성할 수 있는 레벨이었다. 그 레벨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 사냥을 해도 큰 부담이 없었고, 또 거부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메이플스토리는 그 시절 우리가 알던 모험과 성장의 땅과는 거리가 멀다. 최고 레벨은 어느덧 300이라는 숫자에 도달했다. 단순히 일전에도 250, 275라는 확장은 있었지만, 그 연장선으로 100이라는 숫자가 더해진 것이라 치부하기엔 그 간극이 너무나도 깊다. 200 레벨이 누구나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완만한 언덕이었다면, 300 레벨이 주는 느낌은 산소 호흡기 없이 등반조차 불가능해 보이는 히말라야의 설산처럼 느껴진다.


이 거대한 숫자가 주는 첫 번째 거부감은 시간의 단위에서 온다. 과거의 메이플은 오늘 하루 열심히 사냥하면 경험치가 차는 게 눈에 보였다. 만약 '오늘 레벨업을 하겠다'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면 달성하거나, 다음날 가능한 수치까지 끌어올리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무리 경험치 효율이 좋은 미니 던전, 몬스터 파크와 같은 완화 콘텐츠를 진행하고 효율적인 사냥터를 찾아도, 목표 레벨까지 남은 시간, 걸리는 시간의 합은 하루시간 단위가 아닌 한 주, 혹은 한 달 단위로 계산된다. 퇴근 후 한두 시간 짬을 내어 즐기는 라이트 유저에게, 한 달 뒤에나 바뀔 숫자 하나를 보고 매일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유희가 아닌 고역에 가깝다.


이런 기형적인 호흡은 메이플은 만렙을 찍는 게임이 아니다는 기묘한 합의를 만들어냈다. 최고 레벨은 그저 상징적인 천장이고, 효율적인 보스 사냥을 위한 스펙일 뿐, 적당한 구간에 주저앉아 그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끝을 보기 위해 게임을 시작하는 복귀 유저들에게 이러한 기조는 오히려 독이 된다. 정상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며 어차피 정산은 못 가니까 대충 중간에서 놀아라는 조언을 듣는 것이 과연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까.


메이플스토리를 오랫동안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꺼려하는 진짜 이유는 복잡해진 시스템 이전에 압도적인 거리감에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알던 메이플은 성장의 끝이 보였고, 그 끝에서 오는 성취감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진이 아무리 경험치 개선안을 내놓고 성장의 비약을 지급해도, 본질적인 긴 호흡의 피로도는 해소되지 않는다.


숫자가 커진 만큼 유저가 느끼는 책임감도 커졌다. 이제 사냥은 잠시 짬을 내어 즐기는 산책이 아니라, 소설 한 권을 써 내려가는 것과 같은 중노동이 되었다.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효율적인 재획과 기약 없는 달력 체크가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추억을 품고 돌아온 이들이 느낄 감정은 반가움보다는 막막함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200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늘 사냥한 만큼 내일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그 끝이 내 손에 닿을 거리에 있다는 안도감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3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에서 오늘도 로그인 버튼을 누르려는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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