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원래 술을 좋아한다니까요?
우리 엄마 = 술 냄새만 맡아도 기절 인간
우리 아빠 = 평범한 술꾼 술고래 인간
이 반반의 확률에서 난 후자의 경우로 태어나, 자고로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아빠에 의해 초딩때부터 술맛을 알게 되었다.
몰래 마시던 술을 20세가 되자마자 굶주린 늑대처럼 들이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조심히, 조신히 만나던 남자들도 들이 붓기 시작했다.
대충 살던 인생에 술과 남자까지 섞었더니 엄마가 돼버렸다. 당연히 아름답고 고귀함 같은 건 없었다.
언젠가 내가 어릴 적 울 엄마는 ‘아이를 백 번은 낳을 수 있어도 키울 수는 없다’고 했다. 그만큼 키우는 게 힘들다고 했지... 만!
술꾼 여자에게는 오히려 반대일 수밖에, 하여 임신과 수유기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꾹 참아내서야 드디어 술을 영접할 줄 알았지... 만!!
결국 영접한 것은 육아와 돈벌이 그리고 집안일에 (구) 남편 뒷바라지까지, 집에 돌아오면 나가떨어지는 하루살이의 반복되는 삶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몸에서 알코올이 다 빠져나갈 때 즈음 (드디어) 싱글맘이 되고 나서야 진정한 술꾼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평일,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
녀석은 물과 함께, 나는 술과 함께.
주말, 아이와 신나게 놀러 다니며 맛있는 걸 먹고 집에 와서 쉰다.
녀석은 주스와 함께, 나는 술과 함께
어느 날부터인가 우려 섞인 잔소리들이 들려온다.
"그 정도 하면 됐어. 이제 좀 내려놔"
...?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몸은 챙겨야지"
...??
"이젠 너 혼자잖아, 아이를 위해서라도 끊어"
...???
술에 취해 흐트러진 적도, 술 때문에 실수한 적도 없었고 술로 인해 아이를 소홀히 한다거나 하다 못해 건강이 망가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건강검진 결과는 매우 클린 했다.)
난 '진짜' 완벽하게 행복했다.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와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한 삶의 연속일 뿐이었는데 멀리서는 상당한 비극으로 비춰졌나보구나.
매 번 그런 잔소리(또는 걱정, 우려)에 해명하는 일이 귀찮아졌고 이내 나의 설명은 점점, 점점 짧아져 결국 한 마디만 남게 되었다.
"아니 원래 술을 좋아한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