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온도> 시리즈 10 (5)
눈 위에 남은 발자국을 바라보면, 내가 걸어온 시간이 천천히 떠오른다.
이제 내 발걸음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다. 계단을 오를 때면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을 천천히 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밤중에 돌아눕다 보면 문득 “아, 나도 시간을 지나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예전에는 몸이 나를 따라왔다면, 이제는 내가 몸의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걸음이 느려진 만큼 세상이 또렷해졌다.
빠르게 걸을 때는 스쳐 지나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온다.
TTC 버스 창밖으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 눈 위에 남은 제설차 자국, 길가에서 서로 장갑을 고쳐 끼워주는 노부부.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 안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생각들까지.
예전 같으면 스쳐 지나갔을 순간들이 이제는 내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얼굴을 드러낸다.
캐나다의 하늘은 끝없이 넓고 높다.
겨울이면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봄이면 녹아내린 눈 사이로 작은 새싹이 얼굴을 내민다.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주 ‘천천히’ 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곳에서의 삶은 서두르는 대신 기다리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었다.
눈이 녹을 때까지, 해가 길어질 때까지, 발음이 익숙해질 때까지, 관계가 단단해질 때까지.
어느 날 아침,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이 또다시 펼쳐졌다.
밤새 눈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매일 보던 눈이었지만, 그날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눈 위에 겹겹이 남은 발자국들, 무게를 견디며 하얗게 변한 나무 가지들, 그리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내 숨결.
토론토의 겨울 특유의 깊은 정적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제설차의 낮은 진동음이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이웃집 프론트 야드에서 눈을 치우는 소리, 아이들이 학교로 향하며 남긴 작은 발자국들.
그 모든 것이 고요한 풍경 안에서 또렷이 살아 있었다.
그날 나는 문득, 이 낯선 나라에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겹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분명 걸어왔는데, 돌아보니 하나의 길이 되어 있었다.
눈길 위에서 차선을 바꿀 때마다 심장이 먼저 긴장했다.
신호가 바뀌면 뒤차는 망설임 없이 출발했지만, 나는 한 번 더 좌우를 살피고 나서야 엑셀을 밟았다.
그 몇 초의 멈춤이 내게는 생존의 감각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답답했을 그 짧은 시간은, 내 안에서 “괜찮다, 지금은 조심해도 된다” 는 작은 확신이 자라는 시간이었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나는 늘 긴장 속에 서 있었다.
언어가 두려웠고, 문화의 결이 달랐다.
말은 통했지만 공기의 온도가 달랐다.
사람들이 웃는 타이밍, 침묵을 견디는 방식, 거리를 두는 예의까지도 낯설었다.
나는 언제나 한 박자 먼저 생각하고,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처음 자원봉사를 하던 날, 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공기 속에서 스스로를 살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농담을 나누고 일을 분담했지만, 나는 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잠시 멈춰 관찰했다.
누군가의 미묘한 표정, 머뭇거리는 손길, 그리고 소리 없는 침묵까지.
그 속에서 나는 서두르지 않고 주변을 느끼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느린 관찰이 자리 지킴과 조용한 자신감을 주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코업(Co-op)을 통해 처음 현장에서 배우던 시간은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어느 겨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고, 가로등 불빛이 눈 위에 번졌다.
사람들은 하루를 정리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나는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따라 마음이 무거웠다.
일을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회의 자리에서 한 박자 늦게 이해했던 순간, 농담에 바로 웃지 못하고 잠시 생각해야 했던 장면들이 자꾸 떠올랐다.
겉으로는 무사히 하루를 마친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나는 아직도 어딘가 서툴구나”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집에 도착해 코트를 벗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빠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낯선 환경에서도 자리를 지켰고, 이해가 더딜 때는 혼자서라도 다시 곱씹으며 따라가고 있었다.
누군가보다 앞서지는 못했지만,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그날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 느린 적응의 시간들이 부끄러움만은 아니었다.
돌아보니,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내 속도를 탓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던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이 듦은 속도를 빼앗아 가는 대신, 다른 감각을 남겨준다.
예전에는 ‘앞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더 많이 이루고, 더 멀리 가야 한다고 믿었다.
남들보다 늦지 않아야 했고, 뒤처지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묻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는가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는가 아닐까.
나는 이제 속도를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 방향을 살핀다.
이 길이 내게 맞는지, 지금의 걸음이 내 삶과 어긋나지 않는지.
가끔은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예전 같으면 조급했을 그 멈춤이 이제는 나를 정렬하는 시간이다.
물론 여전히 답답한 날도 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날,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 나만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한다.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이 말은 변명이 아니다.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한 문장도 아니다.
오히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기 위한 약속이다.
남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나의 걸음은 느릴지 몰라도, 멈춘 것은 아니라는 확인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내가 걸어온 길을 떠올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강의실의 형광등 불빛, 상담실의 조용한 공기, 겨울 아침 눈 위에 남은 내 발자국들.
빠르게 지나간 시간들은 희미해졌지만, 천천히 견뎌낸 시간들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나는 이제 안다.
속도를 잃었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멀리 가지 못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민자로서, 중년의 여성으로서, 나이 듦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배웠다.
느린 걸음 하나에도 의지와 흔적이 담긴다는 것을.
눈 위에 찍히는 발자국은 깊지 않을지 몰라도, 그 방향은 분명하다.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열고 하얀 눈 위에 발을 내딛는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고, 발밑에서 눈이 사각거린다.
멀리서 제설차가 지나가고, 누군가는 서둘러 출근길에 오른다.
세상은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인다.
나는 잠시 서서 내 발자국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면 사라질 자국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또렷하다.
그리고 안다. 내가 여기까지 걸어왔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느린 걸음 속에서도 내일은 찾아온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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