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서 익어가는 것들

<나이 듦의 온도> 시리즈 중간 휴식편

by 이민자의 부엌


캐나다의 겨울은 길다. 눈이 내리고, 얼어붙고, 다시 눈이 내려 덮어버리는 계절. 스무 해 넘게 이곳에 살았지만, 겨울은 여전히 나에게 ‘견디는 시간’ 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긴 겨울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예전처럼 마냥 버티는 계절이 아니라, 겉은 고요하지만 속에서는 무언가 천천히 진행되는 시간처럼 보인다. 마치 눈 아래 묻힌 땅속에서 씨앗이 숨을 고르듯, 내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발효가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이번 시리즈를 쓰며 나는 자주 ‘나이 듦의 온도’ 라는 말을 떠올렸다.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온도가 달라지는 과정이라는 생각에서다. 뜨겁게 타오르던 시절이 지나고, 모든 것이 식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변형이었다. 식은 줄 알았던 자리에서, 다른 결의 온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너무 깊어지기 전에, 너무 무거워지기 전에, 나를 조금 가볍게 만드는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뜻밖에도 그 이야기는 ‘된장’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의 발효 음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의 냄새였고, 엄마의 손맛이었으며, 내가 떠나온 나라의 온도였다. 캐나다로 이민 온 뒤 나는 된장이나 고추장, 김치를 직접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엄마가, 엄마가 떠난 뒤에는 언니들이 꾸준히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너는 그냥 먹기만 해. 엄마가 해주던 맛 그대로 보내줄게.”


그 말 속에는 사랑과 책임, 그리고 ‘막내는 우리가 챙긴다’는 오래된 질서가 있었다. 나는 그 질서 안에서 편안하게 살았다. 언니들이 보내주는 장을 받으며, 나는 여전히 막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언니들의 나이가 여든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언니들도 이제는 쉬어야 할 나이인데, 나는 여전히 받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말했다.
“언니들, 이제는 내가 직접 담가 먹을게. 보내지 않아도 돼.”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가 더 많이 못 챙겨줘서 그러는 거야? 우리가 늙어서 그래?”


그날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덜어주고 싶었던 짐이, 언니들에게는 사랑을 거부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언니들에게 장을 보내는 일은 수고가 아니라 사랑을 건네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나는 덜어주고 싶었지만, 언니들은 건네고 싶어 했다. 사랑은 때로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손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시작해보기로 했다.


작년 11월, 생애 처음으로 고추장을 담갔다. 모든 재료는 한국에서 공수했다. 고추장만큼은 한국의 맛을 그대로 담고 싶었다. 고춧가루의 붉은 빛을 오래 들여다보고, 엿기름 향을 맡으며 농도를 맞추던 시간은 생각보다 엄숙하고 몰입적이었다.


세 달 뒤 항아리를 열던 날, 햇빛을 받은 고추장의 색이 유난히 깊어 보였다. 숟가락으로 한 스푼 떠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말문이 막혔다.
그 맛은 엄마의 것과도, 언니들의 것과도 달랐다. 그런데 낯설지 않았다. 그 한 스푼에는 내 시간과 내 손의 온도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맛은 전해 받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익혀가는 것이기도 하다. 괜히 어깨가 조금 펴졌다. 주방에 혼자 서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올해는 된장을 담그기로 했다.


지난해 9월, 노란콩 8kg을 사 와 씻고, 12시간 불린 뒤 4시간 동안 푹 삶았다. 삶은 콩을 으깨 메주를 빚었다.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모양을 잡자 콩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에 오래 머물렀다. 메주 표면이 마르며 생긴 작은 균열 사이로 구수한 냄새가 배어 나왔다. 어린 날에는 그 냄새가 싫었다. 촌스럽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 안에 할머니가 있었고, 엄마가 있었으며, 나의 유년이 있었다는 것을.


몇 달이 지나 메주에는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집 안 가장 조용한 방에 두었다가, 햇볕이 드는 날이면 야외용 테이블 위에 잠시 올려두었다. 다시 들이고, 또 내놓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남편이 코를 찡긋하며 말했다.
“집 안에 코로코롬한 발냄새가 나는데?”


나는 모른 척했다. 발냄새라니. 그건 분명 콩이 익어가는 냄새였다. 창문을 살짝 열어 두었지만, 마음은 고요했다. 오래 준비해 온 의식을 마친 사람처럼.


캐나다의 긴 겨울 한복판에 영상의 기온이 찾아온다는 예보가 믿기지 않았다. 이번 주말, 우리는 그 잠깐의 선물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된장을 담갔다.


항아리를 소독하고, 바닥에 북어를 깔고, 메주를 차곡차곡 넣었다. 정량의 소금물을 붓고 숯과 건고추, 건대추를 올렸다. 뚜껑을 덮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안정되었다.


우리 집 백야드 한켠에는 고추장 항아리와 된장 항아리가 나란히 서 있다. 눈이 소복이 쌓여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눈이 덮여 있어도, 그 안에서는 멈춘 적이 없다.


이제 60일 뒤, 장을 가른다. 어떤 향이 날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기다리는 시간 자체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만은 안다.


된장을 담그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나는 이제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잇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떠나고, 언니들이 늙어가고,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그 사이에서 나는 계보를 이어받았다.


발효는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느림이다.
그리고 느림은, 나이 듦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젊을 때는 빨리 알고 싶었다. 빨리 이루고 싶었고,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시간이 스며들어야만 생기는 맛이 있다는 것을. 된장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캐나다의 겨울은 여전히 길다. 백야드 한켠의 항아리는 눈 속에 묻혀 있다. 겉은 고요하지만, 속에서는 천천히 깊어지고 있다.


나이 듦도 그런 시간 아닐까.
나는 지금 그 과정을 살고 있다.
눈 속에서도 익어가는 것들처럼, 나 또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다른 온도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이번 시리즈가 전하는 ‘나이 듦의 온도’ 는 이렇게, 작은 일상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것임을, 나는 이제 안다.







#된장담그기 #고추장담그기 #발효음식 #한국전통음식 #수제된장 #수제고추장 #캐나다이민생활 #캐나다주부 #이민자의부엌 #중년에세이 #브런치에세이 #나이듦의온도 #캐나다라이프 #백야드생활 #장담그기 #메주만들기 #한국의맛 #엄마의손맛 #가족의기억 #이민일상 #캐나다겨울 #홈메이드된장 #홈메이드고추장 #슬로우라이프 #중년일상 #삶의기록 #발효요리 #한국음식문화 #브런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