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인연의 자리>시리즈 11 (6)
그날 아침, 나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는데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장면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은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물렀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한국에서의 시간은 하나의 장면으로 묶기에는 너무 많은 결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하다고 믿어왔던 풍경 속에서도 나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가족과의 재회,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이어지던 이야기들까지. 그 시간들은 빠르게 흘러가기보다 오히려 걸음을 늦추듯 머물며 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지나온 시간보다 지금의 나를 더 또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익숙한 장소였지만 마음은 낯선 길을 걷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남편의 출장으로 머물게 된 4박 5일의 호텔, 마지막 날 아침 조식 뷔페 테이블에 앉아 있던 그 시간은 단순한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의 문턱에 서 있는 순간이었다. 일정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이후에 이어질 시간들이 더 또렷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접시와 컵이 부딪히는 소리, 낮게 오가는 대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 모든 것은 여전히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막 시작되려는 시간의 방향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그 아침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흐름이 조용히 열리는 순간에 가까웠다.
그 흐름 속에서 내 시선을 붙잡은 장면이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한 백인 여성은 김치와 무말랭이 김치를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낯선 음식을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즐겨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간 이유 없이 마음이 멈췄다. 익숙한 풍경이 낯선 빛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녀의 접시 한쪽에 놓여 있던 멸치젓갈이었다. 나에게도 익숙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는 않는 음식인데 그녀는 그것을 주저 없이 집어 들고 천천히 음미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도전’이 아니라 ‘이해’에 가까웠다.
나는 결국 말을 건넸다.
“한국 음식을 한국인인 나보다 더 맛있게 드시는 것 같은데, 혹시 한국 음식을 드셔보신 적이 있으세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고 말했다. 한국은 처음이지만 코스트코에서 김치를 자주 사 먹을 만큼 이미 오래전부터 김치를 좋아해온 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자신의 삶 속에서 이 맛을 선택해온 사람이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녀는 무말랭이를 먹으며 음식의 과정에 대해 물었고, 씹을수록 깊어지는 맛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멸치젓갈을 맛보며 “바다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그 짧은 말 앞에서 잠시 멈춰 있었다. 익숙해서 지나쳤던 맛이 누군가에게는 처음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익숙함은 때로 이해를 멈추게 하고, 낯섦은 오히려 생각을 시작하게 만든다. 캐나다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나에게 김치는 늘 곁에 있는 음식이었고, 그래서 더 이상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나는 그 당연함을 처음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음식에서 끝나지 않았다. 삶의 방식, 여행에서의 경험,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의 인식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날 나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게는 당연했던 김치가 그녀에게는 이미 다른 시간 속에서 선택되어 온 맛이었다.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지나왔고, 그녀는 그것을 좋아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같은 김치를 두고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의 아침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익숙하다고 믿어온 것의 깊이를 처음으로 다시 마주한 시간이었다. 익숙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어쩌면 여행은 낯선 것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시간을 통해 나의 익숙함을 다시 읽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인천의 그 아침은 그렇게 남았다.
낯선 자리에서 익숙한 맛을 다시 만났고, 그 익숙함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롭게 발견된 의미였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다시 비춰진 나의 세계였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인연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그날의 김치 한 접시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의 깨달음으로 남았고, 그 여운은 지금도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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