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대신 선택한 건강한 식생활

<이국땅에서 피어난 밥상의 기억> 시리즈 3 (2)

by 이민자의 부엌



남편은 오랫동안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복용해왔다.
얼마 전에는 당뇨약까지 복용하라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결심이 일었다.


“음식으로 못 고칠 병은 없다.”
그 한마디가 내 안에서 등불처럼 번졌다.
그날 이후, 나의 하루는 식탁 위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남편은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에 익숙했다.
콜라를 즐겨 마시고, 라면이나 튀긴 음식은 늘 식탁 위에 올랐다.
건강과는 거리가 먼 식습관이었지만, 그것이 오랜 세월 몸에 밴 ‘맛의 기억’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소금을 줄이고, 설탕을 끊고, 기름을 최소화한 음식들은
처음엔 남편의 입맛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가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마다 마음 한켠이 흔들렸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입맛도, 습관도, 결국은 사랑과 정성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작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천천히 길을 잡았다.
튀긴 치킨과 콜라는 우리 식탁에서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신선한 채소, 두부, 잡곡밥, 제철 나물, 그리고 구운 생선이었다.
처음엔 어색하던 식탁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외식을 끊은 것이었다.
외식은 칼로리가 높고, 간이 세며, 위생도 불안했다.
게다가 팁 문화가 더해져 마음까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남편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은 내가 직접 만들자.”


그때부터 부엌은 나의 작은 연구소가 되었다.
아귀찜, 갈비구이, 잡채, 갓김치, 파김치, 깻잎김치, 더덕구이, 도라지무침….
그 이름만 들어도 고향의 냄새가 나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정성으로 차렸다.
재료가 필요할 때면 한인 농장을 찾아가 흙 묻은 채소를 직접 캐왔다.
그 흙내음 속에서 건강한 밥상이 자라났다.


요리하는 시간은 나에게도 치유의 순간이었다.
칼질 하나, 양념 한 스푼에도 마음을 담으며
나는 남편의 건강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을 돌보고 있음을 느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을 잇는 다리이자,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였다.


3개월마다 있는 남편의 정기검진 날,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많이 좋아졌어요.
당뇨약은 안 드셔도 되겠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눈빛을 마주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긴 시간의 노력이 담겨 있었다.
‘음식으로 못 고칠 병은 없다’는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날 우리는 함께 확인했다.


그 후로 우리의 결심은 더 깊어졌다.
된장과 고추장도 직접 담가 먹기로 한 것이다.
한국 마트에서 어렵게 구한 항아리를 백야드에 놓던 날,
햇살을 머금은 항아리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속에서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이 떠올랐다.


그분들이 지켜오신 한국인의 밥상,
그 따뜻하고 정갈한 식문화가 내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이제 59세,
이국의 땅 캐나다에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한 달 전 삶은 콩으로 메주를 빚었고,
지금은 2차 발효 중이다.
발효가 끝나면 한 달 동안 햇볕에 말려 보관하고,
음력 정월에 된장을 담글 예정이다.
고추장은 11월에 담그기로 했고,
재료는 이미 다 준비해 두었다.


이곳에서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내는 일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남편과 나의 건강을 지키는 사랑의 방식이며,
가족을 향한 깊은 책임의 표현이다.
한 끼 밥상에는 우리의 삶과 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밥을 짓고, 김치를 담그고, 제철 재료로 반찬을 만드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매일 작은 기적을 느낀다.
남편이 웃으며 한 숟가락 밥을 떠먹을 때,
아이들이 김치를 맛있게 먹을 때,
이국의 땅에서도 우리의 삶이 단단히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요즘 우리 집에는 메주 냄새가 은근하게 퍼진다.
햇살 아래, 발효는 천천히 진행 중이다.
그 향기는 단순히 음식의 냄새가 아니다.
이국에서 지켜내는 우리의 사랑과 삶, 그리고 뿌리의 향기다.


나는 오늘도 밥을 짓는다.
이국의 부엌에서, 그때처럼 —
가족의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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