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캐나다 일상> 시리즈 7(2)
역이민을 고민하게 된 질문
몇 해 전부터 우리 부부 마음 한켠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질문이 자리했다. 남편의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평생을 일궈온 캐나다를 떠나 ‘역이민’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캐나다 의료 시스템의 현실이 있었다.
젊었을 때는 몸이 스스로 회복했고, 병원은 ‘혹시나’의 선택지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몸은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예전 같지 않은 기력, 잦아진 통증, 예고 없이 스며드는 불안. 그리고 그때마다 의료 시스템은 단순한 편의가 아닌, 삶의 안전망으로 다가왔다.
팬데믹 이후 의료 인력 부족은 더 심각해졌다. 예약은 길고, 전문의에게 닿기까지 과정은 느리고 불확실하다. 노년을 준비하는 이민자에게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흔드는 문제였다.
결정적 사건, 12시간의 응급실
어느 평범한 저녁, 찬거리를 준비하다 순간의 방심으로 칼이 손가락을 깊게 베였다. 멈추지 않는 피를 보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급히 주치의를 찾았지만, 그는 상처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응급실로 가세요” 라는 말만 남겼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나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라, 기다림 속 번호가 된 존재였다.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동안 처음 두 시간은 ‘곧 불리겠지’라는 기대가 있었고, 네 시간이 지나자 통증보다 불안이 커졌다.
여섯 시간이 흐르자 마음속에서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지금 보호받고 있는가?”
새벽빛이 병원 창으로 스며들 즈음에서야 비로소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느낀 안도감은 치료 때문이 아니라, 기다림이 끝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한국 의료 시스템의 그리움
물론 생명이 위급한 환자가 우선이라는 원칙은 이해한다. 그러나 통증과 피로, 방치된 느낌 속에서 나는 아플 때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에,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비용은 컸지만, 의료 장비·서비스·속도 모든 면에서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남편이 정형외과를 찾았을 때는 X-ray 촬영, 진찰, 소견, 주사, 물리치료까지 2시간 만에 One-stop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동네 의사 예약조차 최소 1~2주가 걸리고, 검진 장비는 청진기 외 거의 없다. 캐나다 의료무상 서비스의 실체가 이렇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부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고국으로 향했다.
아플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 기다림보다 치료가 먼저인 곳, 말이 서툴러도 눈빛만으로 마음이 통하는 곳. 익숙함과 안전함이 주는 위안이 한국 의료를 그리워하게 만든 이유였다.
삶의 기준이 바뀌는 순간
수십 년의 이민 생활은 우리에게 기회와 성장을 안겨주었고, 계절을 따라 부부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하지만 노년을 바라보는 지금, 삶의 기준은 달라진다.
더 많이 가지는 삶이 아니라, 아플 때 덜 두려운 삶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이 닿는 곳에 사람이 있는 삶
화려함보다 안정, 편리보다 친숙함
스스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
이 단순하지만 핵심적인 기준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긴 질문으로 남은 사건
12시간의 응급실 기다림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삶을 다시 묻는 긴 질문이 되었다.
어디에서 늙어갈 것인가, 어디에서 아픔을 견뎌낼 것인가.
우리의 캐나다 일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오늘도 묻고, 또 묻는다.
만약 낯선 나라에서 노년을 맞이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삶의 마지막 장을 선택하시겠는가?
#아플때생각나는나라
#익숙함이주는안도
#늙어갈곳을생각하다